[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AI가 영화를 만들 때 지켜야 할 것

이세영

입력 : 2025.07.09 18: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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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준 경일대 교수
본인 제공

처음 카메라를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아니, 정확히는 카메라를 '설정'했던 날이다.

조명은 프롬프트로 켜졌고, 배우는 인공지능(AI)이 만든 얼굴로 등장했다.

음악은 딥러닝 모델이 만들어낸 코드였고, 미장센은 스타일 전이 알고리즘이 제안한 톤을 따랐다.

나는 감독이었지만, 동시에 오퍼레이터였고, 설계자였으며 감정 조율자였다.

할리우드에서 열린 AI국제영화제 수상작이자 내 영화 '디너 데이트'(Dinner Date)는 그렇게 태어났다.

한 줄의 코드로 시작된 사랑 이야기, 한 장의 프롬프트로 시작된 영화.

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나는 묻게 됐다.

'이게 정말 내 영화인가?' 기계가 만든 이미지 위에 내가 감정을 얹고, 알고리즘이 구성한 스토리에 내가 맥락을 붙일 때,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가장 결정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기술이 예술의 자리를 위협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수용해야 하는가.

우선, 저작권이라는 오래된 문제가 전혀 새롭게 변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창작자란 손으로 직접 만든 사람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 AI가 '창조적 산출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그 기준은 바뀌어 가고 있다.

나는 수십 개의 프롬프트를 입력했고, 그 결과물을 조합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이 영화는 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법적 해석은 가변적일 수 있다.

AI가 만든 장면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AI는 법적 주체가 아닌데도, 창작의 물리적 결과물을 낳고 있다.

이러한 공백은 기술이 예술을 앞서갈 때 언제나 발생하는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소유'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어떤 장면에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Dinner Date' 제작 과정 중에 여주인공의 얼굴이 지나치게 과장돼 보였던 한 장면이 있었다.

처음엔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AI가 학습한 데이터 안에서 여성 이미지가 왜곡돼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수정했고, 표현을 다시 조율했다.

이건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이었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편견을 고스란히 학습한다.

특정 인종에 대한 편향, 특정 젠더에 대한 고정된 묘사, 그리고 '미'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

기술은 결백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 사회의 무의식적 편향을 증폭하는 거울이 된다.

이 거울을 바로잡는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

감성의 문제도 여전히 AI가 넘지 못하는 벽이다.

'감정'이라는 요소는 논리적 구조로 수렴되지 않는다.

'Dinner Date' 속 남자 주인공은 식사 도중 말을 멈추고 멍하니 상대를 바라본다.

AI는 이 장면을 'disappointed expression'이라 요약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내가 원했던 건 실망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지난 사랑의 후회, 그것을 다시 붙잡고 싶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나는 프레임 하나하나를 다시 만들고, 시선의 방향, 입술의 떨림, 손의 움직임을 수십 번 조정했다.

AI는 연기를 만들 수 있지만, 감정을 통과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는 여전히 사람이 만들고 있다고 나는 강하게 믿는다.

영화 제작 방식 자체도 변하고 있다.

도구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도구들이 병렬적으로 움직인다.

이미지 생성, 음악 제작, 음성 합성, 그리고 자동 편집 도구까지.

중요한 건 그 조합을 설계하는 사람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단지 '정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어야 한다.

같은 음악도 어느 타이밍에 삽입되느냐에 따라 관객의 감정은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기술은 이 타이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경험과 직관, 그리고 수없이 실패한 기억 속에서 길러진다.

AI는 완벽해지려 하고, 인간은 실수하며 배운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인터랙티브 영화, AI 배우, 그리고 AI가 연출하는 영화까지 이 모든 미래가 이미 도래했다.

우리는 그 기술적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든 위기를 동시에 마주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로 만들어낸 고인의 얼굴이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는 살아있지도 않고, 연기하지도 않았지만, 그 장면은 실재하는 감정을 자극한다.

이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이 감동은 윤리적인가? 기술이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때, 예술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창작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만들었다'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내가 AI로 영화를 만든 이유는 효율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이 시대의 감독은 더 이상 장면을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검수하고 윤리를 조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카메라는 AI가 들 수 있지만, 질문은 인간만이 던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강력하다.

나는 앞으로도 AI와 함께 영화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감독이라는 자리를 지킬 것이다.

기계가 주는 효율을 고맙게 받되, 그 위에 사람의 흔들림을 새겨넣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사람의 손으로 감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을 지켜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되묻는다.

"이 장면의 마지막 컷, 정말 사람이 만든 것이 맞는가?" 그 질문이, 내가 아직도 '인간 감독'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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