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협상 농산물 카드에 촉각…실제 소고기·쌀·사과 따져보니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은 여론 악화 우려…쌀·사과 수입도 쉽지 않아농축산업 단체 경고 성명 잇따라…"농민 항쟁 직면할 것"
김윤구
입력 : 2025.07.18 06:15:00
입력 : 2025.07.18 06:15:00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미국은 한미 관세 협상 농산물 분야에서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해제, 미국산 쌀 구입 할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농업인단체의 반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2025.7.15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농축산업계 내에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농산물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민감한 부분은 지키되 그렇지 않은 부분은 협상의 전체 큰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농축산업 단체는 성명이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농축산물을 양보한다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로선 미국이 한국에 쌀, 소고기, 사과 등의 농축산물 품목의 추가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정부 내에선 협상 방안을 놓고 명확한 입장이 정해지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소고기와 쌀은 민감한 품목이어서 적지 않은 진통과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정부 안팎에선 보고 있다.
18일 농업계에 따르면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주축이 된 '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기자회견을 한다.
이들 단체는 식량주권과 국민 건강권을 사수하기 위해 농축산물 추가 개방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에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농업인의 동의 없이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을 허문다면 농업의 지속성 확보와 5천만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대대적인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른 농업인단체인 한국농축산연합회도 성명에서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식량 주권과 국민 건강권을 사수하라"며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면 거대한 농민 항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14일 "농업을 희생시키지 말고 미국의 협박에 맞서 싸우라"면서 "이를 외면한다면 국민은 제2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쟁과 제2의 광우병 촛불로 화답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런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와 여당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후보자는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협상팀도 이를 유념해 관계부처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도 한미 간 관세 협상과 관련해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관세 인하를 관철해야 하고 농민의 생존권과 식량 주권,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30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한미 관세조치 협의 관련 공청회장 앞에서 전국한우협회 등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25.6.30 seephoto@yna.co.kr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농축산물 중 가장 민감한 품목으로는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와 쌀이 꼽힌다.
미국은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검역 규정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왔다.
한국은 지난 2008년부터 미국산 소고기의 경우 광우병 발생 위험이 적다고 여겨지는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는 이 같은 월령 제한을 해제해 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규제가 남아있지 않다면서 한국도 30개월 이상 소고기를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정부 안팎에선 월령 제한을 풀어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2008년 광우병 사태같이 일반 국민 여론이 악화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30개월을 넘은 소고기의 경우 구이용으로 유통되는 물량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30개월 이상 소고기는 햄버거 패티 같은 가공육으로 많이 이용된다.
만약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면 가공육까지 개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가공육은 월령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은 가공육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면 가공육 수입으로 이어지는 수순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해=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낮 지역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19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한 논에서 농민이 모내기하고 있다.2025.6.19 image@yna.co.kr
쌀 수입을 늘리는 것도 복잡한 문제다.
한국은 쌀에 51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40만8천700t(톤)을 저율관세할당물량(TRQ)으로 정해 5% 저율 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쌀 과잉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농민단체는 TRQ 물량을 줄이라고 요구해왔다.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에 TRQ를 할당했는데 미국에 할당한 물량은 13만2천304t으로 32%를 차지한다.
미국 물량을 늘리고 다른 나라 물량을 줄이려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다시 동의받아야 하니 사실상 불가능하고, 미국만 더 늘려주는 것도 통상절차법 따라 국회 비준을 해야 하므로 어려운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재배하는 쌀 수입을 확대한다고 하면 농민들의 반발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과 등 과일 수입은 복잡한 검역 협상이 문제다.
검역 협상에선 병해충 유입 위험성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때문에 절차가 길어진다.
사과의 경우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10여 개국과 검역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검역 협상이 마무리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미국도 사과 수입을 허용해 달라고 신청한 지 30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 수입 위험분석 전체 8단계 중 2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검역 협상을 고려하면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면서 "미국이 사과 검역 협상에 집중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으나 현재까지는 정부가 협상 카드나 전략을 완벽하게 짠 것은 아닌 것으로 감지된다.
농산물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소고기와 쌀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국민 건강을 우선시하고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통상 당국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통상 협상을 타결하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우리 측 발걸음을 재촉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우리 측에 지속적으로 농산물 추가 개방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yki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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