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물타기 하다가 물린 이 주식”…이젠 노후자금까지 위협하네

문일호 기자(ttr15@mk.co.kr)

입력 : 2024.10.27 07:36:01
발행주식 68%가 소액주주
외국인 매도 쓰나미에 휩쓸려

인공지능칩 HBM 개발에도
SK하이닉스 상용화에 밀려
D램도 중국 물량공세에 고전

연매출 10% 규모 R&D 투자
TSMC에 비해 월등히 높아
파운드리 추격 발판 마련도




“7층(주가 7만원대)이면 저층이라 생각하고 삼성전자 주식 샀는데 어느새 5층으로 내려와서 중장기 매수하려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22일 만난 김모씨는 자녀 이름으로 여윳돈이 생길때마다 국내 시가총액 1등주를 꾸준히 순매수하며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근 주가 급락에 매수를 일단 중단했다. 그는 “이젠 주식 투자할 현금도 없다”며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설때 까지 관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족 노후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선택되는 투자처였다. 이날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관료와 22대 국회위원 등 608명 중 236명(38.8%)이 삼성전자 주식을 자신이나 가족 이름으로 보유 중이다. 보유 인원 기준 1등이며 2등 애플(82명) 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삼성전자 소액주주는 지난 6월말 기준 424만7611명. 과거 보다 줄었다곤 하나 이 기업 발행주식의 68%를 보유 중이다. ‘국민주’라는 타이틀이 붙는 이유다.

이런 삼성전자 주가가 ‘외국인 매도 쓰나미’에 휩쓸리며 맥을 못추고 있다. 9월 이후 이달 22일까지 외인은 11조원 어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치웠고, 반대로 개인은 그 물량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국내 반도체 ‘투톱’ 중 한 곳인 SK하이닉스는 외국인들이 매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투자 자산 중 한국 비중을 줄이는게 아니라 유달리 삼성전자만 매도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와 한국 여의도에선 IT 경기 침체로 삼성전자의 범용 반도체가 잘 안팔리고 파운드리(주문형 반도체) 시장에서의 저조한 실적이 3분기 ‘어닝쇼크’로 터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대표되는 AI 시장에서 경쟁자에 비해 한발 뒤진 것이 투자 심리를 크게 약화시켰다는 분석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한탄과 한숨소리가 매수 적기라는 ‘역발상 투자 전략’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증시에 유혈이 낭자할때가 매수 타이밍’이란 오랜 투자 격언을 적용할 때라는 것. 이에 대한 근거로는 삼성전자가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AI 시장에서 권토중래를 노린다는 것이 제기된다. 또 인텔과의 동맹을 통해 파운드리에서 TSMC를 맹추격할 것이란 예상과 현 주가 수준이 자산 가치 기준으로 역사적 저점이라는 투자 데이터가 제시되고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원화 약세(환율 상승)는 외국인 입장에선 삼성전자 주식을 싼값에 살 찬스이기 때문에 매도세를 멈출 요소로도 꼽힌다.

삼성전자를 배당 투자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22일 현재 삼성전자 배당수익률은 2.49%로, 역시 주가가 지지부진한 인텔(2.19%) 보다 높으며 0%대의 하이닉스나 마이크론 보다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의진 흥국증권 연구원은 “실적 전망과 일회성 비용 등 온갖 악재를 반영해도 현 주가에서 더 빠질 가능성은 낮다”며 “현 PBR 1.1배는 과거 5년 평균 수치의 최하단으로 반도체 다운사이클(겨울)을 이미 반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30조 연구개발 투자로 2년후 노린다
글로벌 금융위기 주가 조정기(2008년 5~10월)에 삼성전자 주가는 고점대비 47%나 빠졌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시기엔 1년 내내 하락하며 하락률이 36%에 달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땐 2개월새 33% 조정받았다. 이번 조정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7월 고점(8만8800원)이후 이달 22일까지 35% 조정받아 직전 두번의 조정 시기 만큼 이미 하락한 상태다. 9월 이후 외국인이 하락을 부추겼다.

과거를 살펴볼 때 수많은 주가 조정의 터널을 빠져 나온 비결 중 하나는 우직한 R&D 투자다. 이를 통해 국내외 반도체 ‘타노스’(할리우드 영화 속 가장 막강한 적)를 제압하거나 맹추격해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것을 다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역시 IDM이며 주요 경쟁자들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판매 위주여서 항상 많은 재고 탓에 수익성이 낮은 약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수의 기업들로부터 주문형 반도체 서비스(파운드리) 사업에 나서고 있다.

파운드리의 최대 경쟁자는 대만의 TSMC로 확실한 고객 애플의 물량을 확보해 사상 최대 실적과 함께 주가도 사상 최고가를 구가 중이다.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62.3%(올 2분기 기준)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11.5%로 1등과 격차가 큰 2등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R&D 투자로 15조8692억원을 썼고, 이는 매출대비 10.9%다. 같은 기간 TSMC의 R&D 투자비중(7.4%) 보다 높게 유지하며 점유율 격차를 줄이겠다는 포석이다. 작년 삼성전자 R&D 투자비중도 10.9%였다.

올 상반기 SK하이닉스의 R&D 비중은 7.2%로 삼성전자 보다 낮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1등을 달리는 하이닉스를 따라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기존 D램 시장에서도 경쟁 중이다. 삼성전자는 AI와 파운드리 시장 모두를 잡겠다며 올 들어 인력 구조조정과 사업 개편을 진행 중이다.

연구소 인력을 현장 일선 부서로 재배치하는가 하면 HBM팀을 신설했다. HBM은 D램을 여러 층 쌓아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기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와는 다르다. AI 사업을 하려면 추론 이미지 생성에 필수적인 AI 가속기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HBM이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의 90%를 점유하는 독점 기업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 주가가 어려운 것은 엔비디아에게 HBM을 유의미하게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삼성전자의 꾸준한 R&D 투자와 기술력을 고려해보면 6세대 HBM4의 경우 삼성전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2026년 그 수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PBR 등 투자 지표 고려시 주가가 하락하면 추가 매수하는 식으로 1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3분기는 어닝쇼크지만 4분기엔 다르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2분기 대비 매출은 6.7%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12.8%나 하락했다. 작년에 삼성전자 실적이 워낙 나빴고 최근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직전 분기 대비 실적이 중요해졌다. 특히 영업이익의 경우 증권가에선 10조7000억원대의 이익을 예상했는데 실제론 9조원대가 나오며 예상 보다 15%나 낮게 나왔다.

삼성전자의 최근 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다른 사업은 물론 주력 사업이자 점유율 1등인 메모리 사업에서 조차 부진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중 PC 스마트폰 가전 등 IT제품에 쓰이는 DDR4는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데 최근 중국업체의 물량 확대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하이닉스는 DDR5나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올 3분기에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해 대조를 이뤘다.

4분기(10~12월)가 이미 시작된 만큼 다음 분기 실적이 삼성전자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11조63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91.7%, 3분기 잠정 실적 대비 21.6%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D램 가격이 바닥에서 반등할 여지가 있으며 특별한 일회성 비용도 없어 이익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체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주당순익(EPS)은 삼성전자가 ‘겨울’을 빠져 나오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올해 연간 예상 실적을 반영한 삼성전자의 작년 EPS 대비 올해 EPS 증가율은 137.4%(블룸버그 기준)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올해 흑자로 전환된다. TSMC와 인텔의 EPS 증가율은 각각 34.2%와 -29.6%로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각성하는 순간 반등은 온다”
삼성전자는 HBM을 먼저 개발하고도 상용화는 하이닉스에 넘겨주면서 스스로 최근의 위기를 초래했다. 급기야 3분기 어닝쇼크 이후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은 주주들에게 사과문을 게시하기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은 단순 사과가 실질적인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삼성전자 엔지니어들이 문과 출신 임원들에게 HBM을 설명하고 투자 판단을 기다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의사결정 과정이 길다”며 “매일매일 AI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 비효율적 조직 체제와 비생산적인 비용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비효율적 조직구조는 높은 판관비율로 이어진다. 판관비율은 인건비와 같은 판관비를 해당 기간 매출로 나눈 값이다. 올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판관비율은 14.9%에 달한다. 스마트폰 가전 등 다양한 사업 구조 탓도 있지만 높은 판관비율은 주가를 무겁게 하는 요소다.

이 때문에 관리 부문이 비대해지면서 비용 압박을 받았던 인텔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의 판관비율은 인텔(11.3%) 보다도 높다. 한자릿수인 하이닉스(5.5%) 마이크론(4.8%) TSMC(3.3%)와는 비교 불가 상태다. 이남우 연세대 교수는 “삼성전자 사장급 이상 25명 중 36%를 차지하는 관리 조직을 과감히 축소하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등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등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설비가 필수적인 반도체 업계에선 주가 저평가를 판단할때 PBR이 주요 잣대로 쓰인다. 통상 쓰이는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의 경우 적자시에는 측정이 안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작년에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적자를 기록해 상대 평가가 어려웠다. PER 기준으로는 분기 실적 신기록 행진 중인 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보다 오히려 저평가된 상태다.

삼성전자의 22일 기준 PBR은 1.08배로, 2019년 이후 최저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최악의 경우 인텔의 길을 걸을 것이란 걱정이 작용한 것도 외국인 매도 행진에 힘을 보탰다. 현재 인텔의 PBR은 0.8배 수준으로 삼성전자가 더 하락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증권가 한 리서치센터장은 “실적 보다는 수급이 현재 주가를 흔들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기술자들을 홀대한 인텔의 전철을 밟을 경우 주가는 더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이미 삼성전자 내부 변화와 각성이 나타나고 있어 현 주가는 중장기 분산 투자할만한 구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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