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김정은의 달라진 대남태도…'민족' 대신 '국가 대 국가'
'우리민족끼리' 표현 실종…대남 기구·인물 축소되고 사라져
장용훈
입력 : 2023.06.17 09:00:08
입력 : 2023.06.17 09:00:08

(서울=연합뉴스) 1991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직후 유엔본부 앞에 게양된 태극기 모습.2018.11.7 [국가기록원 제공]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서 '민족'이 사라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개념은 '우리민족끼리'였다.
남북간 협력과 대미의존 탈피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사용됐다.
그러나 이 표현은 2018년 12월을 끝으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기구가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하노이 노딜 이후 달라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전략과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의 력사적 투쟁은 오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며 대남전략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또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는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조성된 형세와 변천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문제를 고찰하고 북남관계에 대한 우리 당의 원칙적 립장을 천명하셨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김 위원장이 천명한 입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존 대남전략이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가주의를 대내외 정책의 핵심논리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남북관계에서도 감지된다.
대표적인 게 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노동당규약이다.
과거에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으로 명시됐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이 문구는 북한 주도의 혁명통일론의 근거로, 남한에서는 북한이 적화통일 의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로 항상 거론해 왔다.
대신 개정 당 규약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과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을 당면목적으로 명시했다.
또 남한과 관련,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한다고도 했다.
북한 내에서 최상위 규범으로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당 규약의 이런 명시는 지상과제였던 북한 주도의 통일론을 포기하고 '국가 대 국가'로서 남북한 공존에 무게를 두는 정권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14일 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2018.4.27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민족 개념을 거둬들인 북한의 달라진 대남태도는 다양한 부분에서 포착된다.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한 깎아내리기가 대표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4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다음날 6·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 1조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2020년 6월 남측이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자 '그따위 놀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올해도 북한에서는 어떤 기념식도 없었고 매체에서 이날을 되새기는 기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태도이다 보니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던 대남기구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하고 이들 기구에서 일하던 관련 인물의 존재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우선 8차 당대회에서 비서국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대남비서 직책이 사라졌다.
김영철 전 대남비서는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공직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비서국 회의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또 대남업무 관계자들은 하노이 노딜 이후 줄줄이 '혁명화 교육'을 받거나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여기에다 그동안 남북대화를 비롯해 중요한 남북관계 현장의 핵심이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자취를 감추었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남북관계 의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조평통이 서기국 보도, 성명, 담화 등의 형태로 발표해 왔지만, 2021년 제8차 당 대회 이후에는 어떤 발표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사실상 대외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021년 3월 담화를 통해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리유가 없어진 대남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천명했다.

(서울=연합뉴스) 노동당 제8차 대회 주석단에 앉아있는 김영철(사진 좌측)·박태덕 당 부위원장.[조선중앙TV 화면] 2021.1.6 [국내에서만 사용가능.재배포 금지.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기관지 노동신문은 과거 매일 5면과 6면을 별지로 발행해 대남비난을 실어 왔지만, 최근에는 북한 내부 소식을 집중적으로 편집하고 있다.
심지어 대남비난 기사를 전담해온 '남조선부'도 없앴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전략이 협력을 통한 관계 변화의 모색에서 '적대적 공존'에 무게를 둔 두 개의 한국(Two-Korea) 정책으로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 대목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분단이 낳은 일시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일반 국가 간 관계로 규정하고 대응하려는 태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해 가는 잠정적 특수관계로서 국가 간 관계와 민족문제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며 "남북관계가 구조적 장기교착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 민족이 사라지고 국가 간 관계가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 메커니즘 상 최고지도자가 가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현재 상황이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러한 구조가 앞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jyh@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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