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모럴해저드] ② 심사역 개인투자, 왜 '쉬쉬'하나
입력 : 2023.07.14 16:43:26
제목 : [VC 모럴해저드] ② 심사역 개인투자, 왜 '쉬쉬'하나
걸리면 벤처캐피털 페널티 막심…출자사업 배제될 수 있어
유명무실 규제, 최근 3년간 임직원 대상 제재 전무문제점이 뻔히 보이지만, 건드리면 골치가 아파질까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문제를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고 한다. 심사역의 개인투자는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지만 심사역은 물론 벤처캐피털 임원, 대표들까지 이 문제를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 이들이 심사역 개인투자에 대한 언급을 피하게 된 데는 관련 규제 미비, 심사역 이탈 리스크, 대외평판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벤처캐피털 심사역(벤처캐피털리스트) A씨는 투자심의 과정에서 자신이 발굴한 B기업에 이미 임원 C씨가 개인 투자한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는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B기업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C씨의 개인투자 때문에 A씨가 투자발굴 성과를 올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심사역 D씨는 동료 심사역 E씨로부터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E씨가 속한 벤처캐피털은 심사역의 개인투자 내역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E씨는 투자조합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투자 사실을 숨길 계획이라고 했다. D씨는 E씨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타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배신자로 낙인 찍혀 '클럽딜(공동투자)'에서 배제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임원 F씨는 회사로부터 자신이 보유한 G사의 지분을 매도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G사의 성장성을 고려할 때 지분을 보유할 시 향후 막대한 매각 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대표 H씨는 F씨의 행동에 속이 탔지만 징계를 내리지 못했다. H씨는 대표 펀드매니저를 맡고 있는 F가 이탈할 경우, 출자자(LP)로부터 페널티를 받게 될까 우려했다.
[톱데일리] 이처럼 수면 아래에서 심사역 개인투자를 놓고 적지 않은 논란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투자를 하지 않는 심사역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지만 개인투자가 부정행위로 판명되거나 적절성을 따져보자며 공론화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사역들의 준법정신이 투철해서만은 아니다. 심사역 개인의 비위가 적발되면 벤처캐피털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규제 방식이 공론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벤처캐피털 운영방침을 정한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등록 및 관리규정'에는 중기벤처기부(이하 중기부) 산하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임직원을 문책하고 처분 내용을 결정하게 돼 있다. 직무 관련 정보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등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하면 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최소 경고, 최대 면직 또는 해임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벤처캐피털 임직원의 비위가 안건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투자 주무 부처인 중기부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최근 약 3년간 벤처캐피털 임직원이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0건으로 조사됐다.
중기부는 심사역 개인 비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기부에는 벤처캐피털 대상 수사권은 물론 심사역 개인투자 내역을 받아볼 수 있는 권한도 없다. 벤처캐피털 건전성을 검토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정기검사를 진행하지만 이때도 심사역 개인투자 내역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벤처캐피털에 관련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심사역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 의혹이 외부로 드러나려면 벤처캐피털의 자체적 문책 요구 또는 외부 제보가 선행돼야 한다. 이에 대해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심사역이 제재를 받으면 벤처캐피털 역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출자사업 참여 제한이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운용재원 상당 부분을 공급하는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는 펀드 운용인력이 제재심의위원회 처분을 받을 시 일정 기간 출자사업에서 배제한다. 해당 심사역이 관여한 펀드는 출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묘연해지는 셈이다. 배제 기간은 감봉 조치의 경우 1년, 직무 정지는 2년, 해임은 5년이다. 벤처캐피털이 감당해야 하는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출자 사업 정성평가 과정에서도 임직원이 제재받았다는 사실은 벤처캐피털에 대한 신뢰도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한국성장금융)도 한국벤처투자와 유사한 출자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최근 2년 내 도덕적 해이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리스크관리, 컴플라이언스 등의 위험관리체계 부재 등이 발견된 위탁 운용사(GP)는 출자사업에서 배제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직원 관련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벤처캐피털 내부에서 처리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감봉, 직무정지 등 정식 징계절차가 아닌 꾸중과 회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례가 대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신생 벤처캐피털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며 심사역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제재를 실행하기 어렵게 된 요인이다. 벤처캐피털 수에 비해 펀드를 결성·운영해 본 경력을 갖춘 심사역 수는 부족한 실정이다. 소속된 회사가 개인투자 금지령을 내리거나 개인투자를 문제 삼으면, 심사역은 투자수익을 위해 이직을 고려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생기면 심사역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된다. 과거 심사역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문제를 공론화하면 더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벤처캐피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사역 개인투자 관련 규정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고, 제재를 하려면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운용사(GP)와 출자자(LP) 간 인력이동이 빈번한 것도 벤처캐피털 임직원과 관련한 비위가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제재를 받은 심사역이 공공기관, 대기업 등 LP로 이직한다면, 자신을 고발한 회사 또는 심사역을 출자사업에서 배제하는 등 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톱데일리
신진섭 기자 jshin@top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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