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가장 화날까"…감정기록앱으로 '마음 디톡스'
실시간으로 감정 상태 입력…"기록만으로 차분해지고 안정""지나치게 의존하면 부작용…사람 만나 정서공유 병행해야"
오보람
입력 : 2023.02.14 07:00:03
입력 : 2023.02.14 07:00:03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회사생활을 하면서 선배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일할 땐 감정을 배제하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 자신이 곪아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감정 일기'를 썼어요." 직장인 이모(32)씨는 몇 달 전 감정 기록 애플리케이션(앱) '무드 미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현재 감정을 입력하고 그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나 상황 등을 짤막한 메모로 남기면 된다.
데이터가 쌓이면 내가 특정한 일을 할 때 대체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어느 시간대에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 등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이씨는 "평소 내 감정을 표현할 일이 잘 없었는데 감정 기록을 한 뒤부터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말하기 수월해졌다"고 했다.
그는 "기록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든다.
무기력증과 우울증도 한결 나아졌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감정 변화를 느낄 때마다 이를 기록하고 정리해 볼 수 있는 앱이 최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무드 미터'의 경우 유료 앱인데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1만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비슷한 종류의 유료 앱 중에선 많게는 10만회 이상 다운로드된 앱도 있다.
사용자들은 운동 종류와 시간을 메모해 육체 건강을 돌보게 해주는 앱처럼, 감정 기록 앱은 자신의 기분을 솔직히 기록해둠으로써 '마음 챙김'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지인 추천으로 앱을 쓰기 시작했다는 직장인 김모(28)씨는 기분을 기록한 뒤부터 감정 기복이 덜해졌다고 했다.
김씨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감정이 요동칠 때가 잦았고 운동을 많이 해도 늘 힘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마음 상태를 하나하나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언제, 왜 기분이 나쁘고 좋은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짜증'
[무드미터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초등학교 교사 윤모(32)씨는 감정 기록을 통해 터득한 방법을 수업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역시 꾸준히 감정 일기를 쓰면서 대인 관계와 사회성이 좋아지는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윤씨의 반 아이들은 상황극을 하며 자기가 느낀 감정을 마주하고 이를 상대방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윤씨는 "아이들이 코로나 세대이다 보니 감정 표현에 서툴러 걱정이 컸다"며 "수업 이후에는 아이들 사이가 훨씬 돈독해졌고, 학교폭력 역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기감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챙김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이라고 본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에서도 자기 마음을 모니터링하는 것에서 치료를 시작한다"며 "자기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늘려갈 수 있어서 의사들도 이런 습관을 권고한다"고 했다.
백 교수는 "약이나 수술만 치료제가 아니다.
감정 기록 앱은 일종의 '디지털 치료제'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기록 그 자체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을 혐오하거나 해를 끼치는 대신 내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자칫 정신 상태나 기분, 감정마저도 철저하게 관리돼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감정 기록을 하되,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정서를 공유하는 게 동반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rambo@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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