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처벌 못해"… 규제 맹점 노린 K리딩방, 美주식에도 검은손

김제림 기자(jaelim@mk.co.kr)

입력 : 2024.05.05 17:35:11 I 수정 : 2024.05.05 23:09:21
나스닥 종목 시세 조종 의혹…하루만에 85% 급락
오픈채팅방으로 투자자 유인
"저는 오펜하이머 교수입니다"
외국인 석학 위장해 투자 권유
서학개미 3주간 858억원 베팅
작전세력, 韓연휴에 기습 매도
피해자 "세력 수사" 요청에도
금감원 美주식 수사권 없어






지난 3일(현지시간) 나스닥시장에서 싱가포르계 원격의료 기업 주가가 1시간도 안 돼 85%나 폭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국내 투자자들이 수백억 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배후 세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로 싱가포르 원격의료 회사 모바일헬스네트워크솔루션(MNDR)으로 이 종목은 그동안 신규 상장주 중에서도 유난히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10일 공모가 4달러로 상장된 첫날 67% 올랐고, 그 뒤 거래일에도 52%, 47% 등으로 상승폭이 컸다. 지난달 19일에는 장중 29.5달러까지 올랐다. 그 후 20달러 초반대에서 횡보하던 주가는 지난 2일 22.07달러에서 3일 3.39달러로 폭락했다. MNDR은 작년 매출액 106억원(약 787만달러)에 영업손실 44억원(약 326만달러)을 기록했다. 급락 직전 시가총액은 1조원에 달했다.

성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고평가된 종목 주가가 계속 상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리딩방(주식 종목 추천 채팅방)이 꼽힌다.

5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3주간 한국인 투자자들은 MNDR 주식을 6361만달러어치 매수했다. 달러당 1350원으로 환산하면 약 858억원 규모다.

서학개미들이 매수한 미국 주식 순위로는 28위다. 같은 기간 미국 시가총액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를 국내 투자자들이 2억4800만달러어치 사들인 점을 감안하면 신규 상장주로는 이례적으로 큰 매수가 이뤄진 것이다.

여러 채널을 통해 리딩방에 가입한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외국인 교수들이 오픈채팅방에서 주가 추격 매수를 권했으며 주문 가격도 정해줬다고 전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은 연휴를 맞아 한국인 투자자들의 거래가 뜸한 시점을 틈타 리딩방 운영자들이 한꺼번에 물량을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리딩방 운영자들은 이른바 '핀플루언서(Finance+influencer)'들의 유튜브 영상 댓글과 네이버 밴드에 링크를 걸어 회원들을 모집했기 때문에 파장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은 해외 주식 거래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불공정거래 또는 시세조종에 대해 조사·수사할 권한이 없다. 이에 따라 형사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주가가 급락한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역시 어려워 보인다.

이날 MNDR 투자자들에 따르면 마크 교수, 오펜하이머 교수 등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들은 오픈채팅방에서 가용 자금과 대출 가능한 금액 등을 물어보며 주식 매수를 권했다. 당시 공모가 4달러에서 한창 오르던 MNDR을 4월 12일에는 지정가 11달러에, 4월 19일에는 23.3달러에 주문을 넣으라고 권유했다.

리딩방 회원들에게는 주가가 60달러까지 간다고 하면서 금액이 크면 클수록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안내했다. 1000만~5000만원은 예상 수익이 60%, 5억원 이상은 최소 120%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또한 급락 직전일인 5월 2일에는 남은 가용자금 전량을 시장가에 매수하라고 권유한 후 회원들에게 체결 내용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3일 폭락 이후 오픈채팅방은 폐쇄된 상황이고 리딩방 운영자들은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피해액 전액을 보상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까지 리딩방 사기에 대한 판례에 따르면 계약금이나 수수료는 법률상 무효 행위로 보고 전액 반환하도록 했다. 다만 투자 손실액에 대해서는 주가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이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리딩방 운영자들의 매도로 주가가 급락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전액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리딩방 운영자들이 대거 매도했는지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종목에서 일어난 불공정 행위인 탓에 한국거래소나 금감원의 조사·수사 권한이 제한돼 있어서다.

이처럼 주식 리딩방 피해가 해외 주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규제는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국회는 최근에서야 리딩방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지난 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식 리딩방 등을 운영하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의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개정안은 공표일로부터 6개월 뒤 시행된다.

[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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