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1000만시대, 유언장 미리 써두세요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5.05 17:29:42 I 수정 : 2025.05.05 19:39:24
유언쓰기 전도사로 나선 공익변호사 이주언 씨
고령화 심각한 고향 부산 귀향
보살핌 받기힘든 홀몸노인에
장례 방식·유산 처분 등 도와
비혼자 늘면서 청년들도 관심
지방 소도시로 교육 확산되길




이주언 변호사가 공영장례 조문단 활동 사례집 내용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고 자발적 비혼이 늘면서 누구나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혼자 지내다 죽으면 공영장례가 필요할 텐데, 공영장례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고 싶다'며 유언장 작성 교육을 받고 공영장례 조문단으로 활동하는 봉사자도 있죠."

부산 지역 유일의 '전업 공익변호사'인 이주언 변호사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유언장 작성 교육의 필요성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2022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거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유언장을 작성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가 주력 교육 대상이지만 2030세대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에서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유언장은 사망 후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하는 법적 의사표시 수단인 유언을 담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적합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에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무연고자는 사망할 경우 관할 지자체가 재산 처분이나 장례 등을 공영장례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만큼 유언장을 사전에 작성하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된다.

이 변호사는 "보육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에게 장례 주관을 맡기고 싶다며 자립청년이 찾아오거나, 자신의 유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신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도록 절차를 묻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수강생 중 일부는 저를 유언 집행 대리인으로 지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언 작성 교육은 '노인과 바다'라는 아픈 별명을 갖고 있는 부산의 특성이 반영됐다. 부산 다대포 출신인 그는 2015년부터 함께한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 '두루' 내에서 임팩트소송(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소송)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역 이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며 2022년 귀향을 결심했다. 6개월 동안 지역 단체를 매일 찾아가며 현안을 파악하다 무연고 사망자 처우 문제에 눈을 떴다. 늙고 파편화된 지역의 인구구조 변화가 피부에 와닿은 것이다.

공영장례 사례를 보면 관계 단절로 고립사를 맞게 되는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다수를 이룬다. 특히 사회적 관계 형성이 취약한 남성 홀몸노인의 경우 사망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1인가구 증가와 함께 경제적 이유 등이 더해지며 확산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수는 지난해 3월 1002만1413가구를 기록하며 1000만가구를 돌파한 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면서 무연고자로 분류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447명에서 2023년 5415명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지역 사회복지연대 등 공영장례 태스크포스(TF)는 활동의 근간이다. 지자체가 상조회사에 위탁한 무연고 사망자 대상 공영장례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공영장례 조문단'과 함께 점검한다. 조문단은 유언장 작성 교육을 받은 시민들이 주축이다. 빈소와 제사상 음식의 품질이 부실할 경우 해당 지자체에 알리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이 변호사는 "부산 지역의 경우 통상 80만원의 장례 비용이 시 예산으로 집행된다"며 "고인의 존엄한 죽음과 시민의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빈소 운영 시간이 4시간으로 너무 짧다는 지적도 반영해 최소 6~8시간은 연장 운영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장례 절차를 개선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다른 지역에서 유언장 작성 교육이나 공영장례 문의가 늘어나면서 이 부분도 적극 돕고 있다. 또 지역 내 공익변호사 육성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엔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산하에 프로보노 소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지역 변호사들이 쉽게 공익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전국에 150명 안팎의 공익변호사가 있는데 100명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됐다"며 "부산, 광주 같은 광역시도 1~2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소수의 공익변호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을 맡으면서 결국 지치는 악순환 구조가 문제"라며 "젊은 변호사들이 지역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를 바꾸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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