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⑸
-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에 의한, 아프리카를 위한 기념일이은별 고려대 언론학 박사
우분투추진단
입력 : 2025.06.12 07:00:05
입력 : 2025.06.12 07:00:05

[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대학 시절부터 '아프리카'에 매료됐다.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튀니지, 르완다, 짐바브웨까지 종횡무진 누빈 필자의 경험담은 지인들 사이에서 늘 '또 아프리카야'라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국가마다 다른 목적과 이유로 다녀왔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필자는 몸과 마음이 늘 '아프리카'로 향해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54개국이 있는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감추곤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아프리카'라는 단일한 이미지로 대륙 전체를 뭉뚱그려 인식하는 편협한 세계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때 필자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짐바브웨에 머물며 이러한 문화적 인식을 다시 보게 됐다.
개별 국가를 하나의 '아프리카'로 환원해 버리는 서구 중심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아프리카 내부에서 작동하는 고유의 목소리, 바로 5월 25일 '아프리카의 날'(Africa Day)을 기념하는 아프리카만을 위한 축제를 경험한 덕분이다.

짐바브웨 자유박물관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날 61주년 행사(2024.5.29.저자 촬영) [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의 날'은 1963년, 아프리카연합(AU)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OAU)가 창설된 날이다.
1951년 리비아를 시작으로 이집트, 수단,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독립했다.
사하라 이남에서는 가나가 1957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1963년에도 포르투갈(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스페인(서사하라, 적도 기니), 영국(舊남로디지아·짐바브웨) 등은 여전히 식민 지배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OAU 창설 회원국들은 아프리카 독립과 단결을 위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게 된다.
그 이념적 기반이 바로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다.
범아프리카주의는 아프리카 대륙 내부에서 시작된 사조가 아니다.
노예무역에서 시작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열망과 끊임없는 타자화에 직면한 유럽과 아메리카 흑인 지식인들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운동에서 비롯했다.
이는 곧 사상적·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대륙 내 식민주의 잔재를 제거하기 위한 실천적 운동으로 이어졌다.
가나 초대 대통령 콰메 은쿠르마는 범아프리카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아프리카 독립운동과 정치적 통합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다.
OAU는 개념적 차원에 머물 수도 있었던 범아프리카주의를 조직적으로 구현했다.
이들은 군사력을 직접 보유하지는 않았다.
대신 옛소련, 쿠바,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정신적 무장, 군사 훈련, 외교적 압력, 재정 지원 등으로 식민 해방 운동을 지원했다.
이처럼 범아프리카주의는 반식민 저항 이념이라는 점에서 범아시아주의(Pan-Asianism)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OAU는 2002년 AU로 조직을 재편해 정치·경제적으로 협력과 연대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원 아프리카'(One-Africa)라는 공동체 정체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5월 25일이 되면 각국 정부 부처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연대와 정체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에서는 '아프리카의 날'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의미 있는 기념일이다.
2024년 5월28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남서쪽으로 약 7㎞ 떨어진 자유박물관에서 '아프리카의 날' 6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짐바브웨 외교부와 짐바브웨 주재 아프리카 외교단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진심 어린 축하를 나눴다.
참석자들은 전통 의상에서 착안한 현대적 복장을 차려입었다.
이들은 감각적인 패션을 두고 서로 칭찬을 주고받았다.
민족적 특수성을 '아프리카'라는 보편적 정서로 녹여내고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야말로 범아프리카주의를 실천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바브웨 자유박물관은 2020년 12월 3일 첫 삽을 떴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서구 중심의 왜곡된 시선을 넘어 국가적·대륙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건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착공 이후 건설 및 전시품 수집이 지연됐다.
박물관은 1년 이내(2025년 5월 기준)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이 식민주의에 맞서 싸운 선조들에 대한 업적을 기억·기록해 기념화하는 작업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가 열린 '헤리티지 빌리지'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화려한 복장과 활기찬 목소리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선 참석자들 뒤편으로, 아직 마감되지 않은 벽돌 벽에 무심하게 걸린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은 범아프리카주의가 실천된 역사를 담고 있다(2024.5.29.필자 촬영) [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림 속 아프리카 전사들은 창과 방패를 들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제국 군대에 용맹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폭력에 피지배 민족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을 반박하듯, 오른편에는 결연한 얼굴을 한 여성 전사들도 보였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집단으로 봉기해 해방의 역사를 만든 이들 후예.
마치 그림 밖으로 나와 '아프리카의 날'을 함께 기념하는 듯했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에 의한, 아프리카를 위한 기념일이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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