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방산AI혁신 추진 美벤치마킹 개편안 국정과제로 軍·방산기업 인프라 '따로따로' 빅데이터·AI학습 길 막혀있어 내년 방산 정책금융 25% 증액 100조원 첨단산업기금도 활용 美국방부, 구글·아마존과 계약 3년 전부터 방산클라우드 구축
글로벌 방산업계의 인공지능(AI) 활용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우리 군이 보유한 대규모 데이터를 방위산업 기업들에 개방해 AI무기체계 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방·방산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해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미국식 모델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민관 합작 방산펀드를 조성해 K방산에 대한 투자를 확 늘려 산업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한다.
9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국방 데이터 개방을 통해 방산 분야 AI 혁신을 지원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넣을 방침이다. 국정기획위 외교안보분과는 최근 방위사업청, 혁신 방산기업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우리 군과 방산기업들은 대량의 실증 데이터를 생산·보유하고 있지만, 보안을 이유로 모든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망에서 비밀 수준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AI, 빅데이터 등을 통한 첨단 무기체계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이다.
AI 기술을 다루는 한 방산업체 대표는 "방산기업 입장에선 파편화돼 있는 군의 인프라스트럭처와 데이터 통합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며 "이 부분이 막혀 있어서 무기체계와 관련된 AI 학습이나 개발을 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AI 첨단 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핵심 과제로는 방산 클라우드 환경 조성이 꼽힌다. 클라우드 환경에 모인 데이터를 최신 AI 기술과 접목해 무기체계 개발 기술과 속도를 극대화하고 비용 절감까지 노릴 수 있다. 이미 미국이 군의 AI·클라우드 전환을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합동 전투 클라우드 역량(JWCC)' 프로젝트를 통해 2022년 아마존웹서비스(AWS), 오라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4개사와 90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클라우드 구축에 나섰다. 국방 데이터에 대해 물리적·획일적 보호에서 벗어나 중요도에 따라 세 단계로 분류해 방산업체와 필요한 정보를 유기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오픈AI와 맞춤 AI 도구를 제공하는 2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 정보기관인 CIA(중앙정보국)는 예전부터 AW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방산업계에선 한국도 미국처럼 민간 클라우드 업체의 기술력을 활용해 AI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보안 수준을 상·중·하로 나눠 국방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클라우드 기업의 인증 기준도 만들었으며, 이미 삼성SDS와 KT클라우드 등 국내 기업들이 최고 보안 수준인 '상등급' 검증을 통과했다. 여기에 새 정부가 추진하는 소버린AI까지 접목한다면 순수 국내 기술만으로 국방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 보안 문제 해결도 수월해진다.
다만 소버린AI와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을 우선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장벽 시비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상등급' 보안 기준에선 소버린AI를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하등급' 등 보안 요구 수준이 낮은 정보에 대해선 AI와 클라우드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하는 쪽으로 협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AI·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K방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투자 재원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현재 추진 중인 50조원 규모 첨단산업전략기금에 연기금과 민간 금융자금, 일반 국민 재원 등을 더해 100조원까지 규모를 키운 후 방산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첨단산업전략기금을 모펀드로 놓고 그 밑에 민간·국민 투자를 받아 자펀드를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여기에 내년부터 K방산에 대한 정책금융을 25% 늘려 4조원대로 증액한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민관 합작투자 등에 적극적으로 쏟아붓는다.
정부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산업 협력 분야로 조선업을 언급한 만큼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지원에 공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첨단산업전략기금과 민간 기업이 손잡고 합작법인(SPC)을 만들고, MRO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규모 설비 지원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AI 첨단 무기 개발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K방산의 국제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