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몸만 빠져나와 걸어서 산 넘어 대피"

도당천 범람에 서산시 음암면 유계1리 저지대 주민들 긴급 대피잠시 비 그치자 집에 돌아와서는 난장판에 망연자실
정윤덕

입력 : 2025.07.17 15:09:34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서산 도당천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7일 오전 충남 서산에 많게는 400㎜의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음암면 도당천이 소용돌이치며 무섭게 흐르고 있다.도당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저지대 주민들은 꼭두새벽에 걸어서 산을 넘어 마을회관으로 대피해야 했다.2025.7.17 cobra@yna.co.kr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이 동네서 4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여.

겨우 몸만 빠져나와 산 넘어 대피했어." 17일 오전 충남 서산에 많게는 400㎜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음암면 유계1리 주민 김상현(79) 씨는 아찔했던 새벽 상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밤새 끊이지 않은 천둥소리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다가 오전 4시께 번갯불에 스치듯 보인 창밖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을 옆을 지나는 도당천이 범람해 집 앞 논과 마당이 온통 물에 잠긴 것이었다.

김씨가 대피하기 위해 집을 빠져나왔을 때 물은 이미 그의 허리춤까지 차올라 있었다.

마당에 있던 장독들도 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길이 모두 물에 잠긴 상태라 김씨를 비롯한 이 마을 저지대 주민 9세대 16명은 직선으로 600m 이상 떨어진 마을회관으로 대피하기 위해 어두컴컴한 산을 걸어서 넘어야 했다.



"이걸 다 어쩐댜?"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7일 오전 충남 서산에 많게는 400㎜ 넘는 물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새벽에 마을회관으로 피신했던 음암면 유계리 주민 김상현(79) 씨가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집으로 돌아와 논밭을 정리하고 있다.2025.7.17

김종관(67) 씨 부부도 산을 넘어 대피했다가 잠시 비가 그친 사이 집에 돌아왔다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마당은 밀려온 토사로 뒤덮였고, 농사에 쓰던 화물차는 침수돼 시동도 걸리지 않았으며, 집 앞 논은 벼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물에 잠겨 있었다.

김씨는 "하천 하류 물이 빠져야 논에 들어찼던 물이 빠져나갈 텐데 앞으로도 비가 계속 온다니 걱정"이라며 "한동안 손도 댈 수 없으니 올해 농사는 모두 망쳤다"고 한탄했다.

앞집은 김씨네보다 터가 더 낮아 점심때까지도 마당에 물이 빠지지 않았다.

건물 중간까지 흙탕물이 찼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 폭탄에 집 거실도 난장판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7일 오전 충남 서산에 많게는 400㎜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음암면 유계리를 지나는 도당천이 범람하면서 물에 잠겼던 한 주택 거실이 난장판으로 변해 있다.2025.7.17 cobra@yna.co.kr

조병화(64) 씨 부부는 눈앞이 더 캄캄했다.

비닐하우스는 모두 뜯겨나가 초토화됐고, 논밭은 물바다가 됐으며, 트랙터를 비롯한 영농장비도 모두 범람한 하천물에 잠겨 못 쓰게 됐다.

더욱이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 거실이며 안방이며 모두 난장판이 됐다.

이웃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허리까지 삐끗했다는 조씨는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는 없을 것"이라며 "정말 농사꾼들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효수(65) 씨 부부는 길이 물에 잠긴 데다 산이 가팔라 대피도 못한 채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중 굉음과 함께 산에서 마당까지 밀려온 토사와 나무들을 치우느라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렸다.



"이걸 언제 다 치운댜?"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7일 오전 충남 서산에 많게는 400㎜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음암면 유계리 주민 신효수(65) 씨가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집 뒤 토사와 함께 밀려온 나무를 치우고 있다.2025.7.17 cobra@yna.co.kr

1t 화물차에 버섯을 싣고 오전 5시께 물에 잠긴 유계1리 도로를 지나던 김병수(71) 씨는 중간에 차 시동이 꺼지면서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범람한 하천물이 운전석까지 차오를 때까지 119와 보험사 등에 전화를 수십통 걸었지만, 구조의 손길은 그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다.

김씨는 "나중에 소방관에게 구조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서산에서는 침수된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cobra@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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