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테트리스] 이태원클라쓰 러시아 팬이 차린 '한강라면집'
한강공원 편의점서 쓰는 즉석 라면조리기로 셀프 요리SNS로 입소문…"판매 1위는 까르보나라 불닭"
최인영
입력 : 2024.12.21 07:09:00
입력 : 2024.12.21 07:09:00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 모스크바 바우만스카야역 인근 번화가에 자리잡은 '코노'(KONO)라는 작은 가게.
아나스타시야(14), 폴리나(19) 씨가 나란히 앉아 한국 라면을 먹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각각 짜파게티와 치즈불닭볶음면.
토핑으로 치즈, 소고기, 떡도 올렸다.
단무지를 한 입 베어먹더니 남은 조각은 라면 위에 올려놓았다.
'사이드메뉴' 김밥과 핫도그를 가운데 놓고 나눠 먹었다.
이들은 이 라면을 직접 끓였다.
원하는 라면과 토핑, 음료수를 골라 무인계산대에서 계산한 뒤 라면 조리기에 놓고 조리법에 맞게 물·시간 조절 버튼을 눌렀다.
물이 끓는 동안에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팝 걸그룹 뉴진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깨춤을 췄다.
한국의 바나나 우유와 찰떡아이스로 마무리하면서 '한국 분식 체험'을 완성했다.
아나스타시야 씨는 "소셜미디어(텔레그램)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이곳에 온다"며 웃었다.
폴리나 씨는 "2018년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태권도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라면이 맵지 않은지 묻자 "매운 소스는 조금만 넣었다"며 웃었다.
먹는 내내 셀카와 영상 찍기를 잊을 리는 없다.
이 가게는 서울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봉지라면 즉석조리기로 러시아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른바 '한강 라면'은 케이팝 스타 에스파 카리나의 '먹방' 등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면서 해외에도 알려졌다.
가게 안 선반에는 수십 종의 한국 라면이 진열돼 있었다.
라면값은 195∼250루블(약 2천700∼3천500원), 즉석조리용 일회용 접시는 45루블(약 600원), 각종 토핑은 40∼90루블(약 600∼1천300원)이다.
한국 음료수와 과자, 닭강정 등도 판다.
점원 스베틀라나(20) 씨는 한국인을 보자 한국어로 "대박!"이라고 외치며 반가워했다.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 치즈 불닭볶음면, 참깨라면, 짜파구리, 튀김우동이 가장 잘나가는 '톱5'죠.
러시아인들은 아무래도 한국의 매운맛이 익숙하지 않아서 맵지 않은 라면을 추천해달라고 합니다." 가게 근처에 대학교가 3곳이 있어 코노의 주 고객층은 아무래도 젊은 층이다.
주로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10, 20대가 한국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려고 주로 찾지만 생소한 판매 방식에 호기심을 가진 장년층도 꽤 많이 온다고 한다.
라면에 치즈를 올려서 먹고 있던 마리야(27) 씨는 "라면을 좋아하는 어머니께서 이 가게를 알려주셨다"며 "오래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한국 음식을 더 알고 싶고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러시아 블로거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35가지 라면을 먹어보고 각 라면을 평가하는 글을 올렸다.
"파티를 즐긴 뒤 해장하기 딱 좋다"는 후기도 있다.
지난 8월 이 매장을 연 사장 안톤 바르코노프(24) 씨는 "마치 한강공원의 한 조각을 러시아로 가져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동료들과 서울을 여행하다가 한국인들이 작은 가게에서 라면을 골라 다양한 토핑을 넣고 특별한 기계로 직접 끓여 먹는 모습을 보고 모스크바에도 한강라면을 도입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바르코노프씨는 "직접 셰프가 돼서 맛을 실험하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양파, 달걀, 김치를 추가해서 먹어봤다.
3분 만에 따뜻하고 풍미 가득한 요리가 눈앞에 나타났다"며 한강라면과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6개월간 동료들과 러시아에 한강라면을 어떻게 도입할지 논의하고, 공급 업체를 찾고, 여러 테스트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열혈 팬이라는 그는 "출근할 때 '시작'(이태원클라쓰 OST)을 즐겨 듣는다.
드라마를 보면서 동기부여가 됐다"고 했다.
매장 밖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일본어로 '라멘'이라고 적힌 네온사인과 일본 거리 모습의 장식이 한국인에겐 다소 '미스매치'이긴 했다.
바르코노프씨는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도 이 가게의 주 고객층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초 좀 더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는 벨로루스카야역 인근에 2호점도 연 그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요리와 다문화적인 요소를 더 많이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경색된 한러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기대도 드러냈다.
"우리는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앞으로 더 독특한 한국 상품을 수입하고 아늑한 한국식 카페를 열거나 한국문화축제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abbi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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