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근 EY한영 대표 팬데믹 위기서 호실적 이끌어내 정중동 행보 속에서 연임 성공 정부 회계개혁 보완 방안 공감 "회계업계, 산업분야 전문성 높여야 AI 기술에 100억弗 투자 계획"
지난달 금융당국이 아홉 달 넘게 고민한 뒤 내놓은 '회계개혁 보완 방안'이 발표됐다. 재계와 회계업계가 각각 '부담 완화'와 '회계투명성 제고'를 내걸고 2018년 도입된 신외부감사법을 조정할지 말지 갑론을박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핵심 쟁점이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당분간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국회계학회의 연구용역 결과가 '회계개혁으로 감사 품질의 향상이 확인된다'로 나온 것이 결정적이었다. 회계업계 입장에선 어렵사리 만 4년을 진행해온 회계개혁의 동력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렸을 결과다.
회계개혁 이후 감사 품질과 회계투명성 제고를 이끈 주체는 단연 업계를 리드하는 빅4 회계법인이다. 이를 증명하듯 2020년대 초반부터 빅4 회계법인을 진두지휘하던 수장들은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의 평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초유의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었음에도 각 회계법인의 스타일을 잘 살리고 매출 면에서도 인상적인 결과를 내놨다는 것이다. 빅4 회계법인 대표들 중 가장 젊은 박용근 EY한영 대표이사의 행보는 특히 눈에 띈다.
그는 화려한 대외 행보를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임기 1기에 정중동(靜中動)의 의미 있는 성과를 다수 냈다. 2020회계연도(2019년 7월~2020년 6월) 기준 3880억원이었던 EY한영의 매출은 2022회계연도에는 4364억원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EY컨설팅의 매출(1915억원)을 더할 경우 EY한영 총매출은 6280억원으로 껑충 뛴다. 대표로 재직하면서 EY글로벌이 선정하는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World Entrepreneur of the Year)'의 월드 마스터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오는 쾌거도 이뤄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2021년 한국인 최초로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이 상을 받았는데, 이 또한 박 대표 체제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작년 12월 연임에 성공하고 올해 7월부터 임기 2기를 묵묵히 꾸려가는 박 대표를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만났다. 그는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기회가 왔을 때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역설했다.
먼저 박 대표는 지난달 발표된 회계개혁 보완 방안에 대해 "회계개혁의 취지를 유지하면서 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한 균형 잡힌 조치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는 그는 회계업계가 노력할 부분도 강조했다. 박 대표는 "감사위원회 등 기업의 지배기구들과 유기적인 소통을 하고, 감사업무팀의 산업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며 "자산 2조원 미만 상장사들에 대해 연결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이 5년 유예됐는데, 회계업계는 이 유예기간을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기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 인프라스트럭처가 열악한 국가에 위치한 자회사의 내부 통제나 부정위험관리 프로세스 등 중요 분야에 대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회계업계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계와 회계업계를 따로 보지 않는 시각은 그의 냉정한 현실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하반기부터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올해 초 나오기도 했지만, 내년까지는 쉽지 않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박 대표는 이어 "금융환경이 지난해 말보다는 다소 호전되고 있으나, 인수금융 금리는 여전히 7%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플랫폼 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연기와 매도자와 매수자 간 밸류에이션 갭이 줄어들지 않아 딜 클로징의 확실성은 여전히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현재 추세가 적어도 올해 말 이후까지는 갈 분위기이고, 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인 인수·합병(M&A)시장의 활성화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딜 분야에서 새로운 물꼬를 틀 부문으로 전기차 부품,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 바이오·헬스케어, 반도체, 로봇 등을 꼽았다.
경기 회복 여부는 EY한영 등 회계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엔 올해 신입 공인회계사 채용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EY한영은 제반 경제 상황을 고려해 채용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규모는 매년 상이하다"면서도 "올해는 경기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회계업계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채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Y한영 또한 예년보다 채용 규모가 작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편 퇴사율 또한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회사 내에 많은 경험을 지닌 전문가들이 더욱 오래 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며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업무 효율성과 성과 증대 등을 노리는 등 조직 역량 강화를 꾀해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내실을 키우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EY글로벌은 감사 품질, 혁신, 기술, 인재 등에 2024년까지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AI를 비롯한 혁신 테크놀로지에 투자해 고객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지원하고 있으며, 디지털 감사 플랫폼인 'EY캔버스(Canvas)'와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EY헬릭스(Helix)' 등을 활용해 감사 품질을 높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2017년부터 실제 업무에 적용해온 EY헬릭스는 소속 회계사들의 업무를 상당 부분 돕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EY한영의 새로운 먹거리로 ESG(환경·책임·투명경영) 정보공시 의무화와 정보공시에 대한 인증을 꼽았다. 이미 EY한영은 전담인력 50명, 겸임을 포함한 총 150명 규모의 'ESG 임팩트 허브'를 꾸리고 해당 분야를 공략할 채비를 마친 상태다.
박 대표는 임기 중 가장 기억나는 순간으로 서정진 회장이 글로벌에서도 인정받아 2021년 EY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던 때를 꼽았다. 서 회장은 2010년에 EY 최우수 기업가상 라이징스타 부문에 선정되고, 10년 후인 2020년에 EY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은 바 있다. 멈추지 않고 혁신을 주도한 그의 기업가정신 여정을 EY한영이 함께한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박용근 대표이사 △1971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MBA) △한국 공인회계사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감사 △1995년 EY한영 입사 △1999~2001년 EY 미국 애틀랜타 오피스 근무 △2017년 EY한영 감사본부장 △2020년~현재 EY한영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