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 이건 아니죠”…‘진상고객’에 서비스직은 한숨만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입력 : 2023.01.29 08:00:00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의 한 백화점 내 신발 매장 앞에 유튜버 A씨가 드러누워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새해에도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며 소비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백화점 직원과 자영업자 등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이른바 ‘진상 고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례함은 기본,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일도 비일비재해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9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3일 영등포의 한 백화점에서 신발 진열대를 부수고 바닥에 드러눕는 등 행패를 부린 여성 A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A씨는 백화점에서 정품 신발을 구매했는데 모조품이 와 항의하는 차원에서 소동을 벌였다고 유튜브를 통해 주장했다. 그러나 백화점 측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구매한 신발의 AS를 의뢰한 뒤 새 신발을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고, 이를 거부당하자 난동을 피웠다.

A씨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당시 영상을 보면 그는 직원들에게 반말도 모자라 심한 욕설까지 퍼부었다. 백화점 직원들과 다른 소비자들까지 위협한 A씨의 소동은 경찰이 출동해 그를 연행한 다음에야 비로소 마무리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은 갑질 고객의 폭행이나 폭언, 위협, 성희롱 등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대부분은 증거 확보와 보안팀 호출 등 ‘투트랙’ 형태로 이뤄진다.

증거를 확보하는 건 만에 하나 형사고발이 이뤄질 경우를 고려한 것이고, 보안팀을 투입하는 건 추가적인 돌발행동을 제지해 직원과 다른 고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돌발 변수가 많아 직원들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복합쇼핑몰 보안팀 관계자는 “사실 보안직 근무자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진상고객을 물리력으로 제압하면 도리어 폭행 혐의로 근무자들이 입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후배 직원들에게는 가서 경찰이 올 때까지 본인 몸으로 막으라고 하는 편”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7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직원이 음식을 준비 중인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백화점 등 대형쇼핑몰도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로서는 더 난감한 상황이다. 점주 혼자 운영하는 ‘1인 가게’의 경우 보안팀은 고사하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 악성 리뷰 등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카페 사장 B씨가 70대로 추정되는 만취 노인 2명이 매장에서 소란을 피우고 의자와 바닥 등에 소변을 누고 갔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B씨가 올린 글에 따르면 노인들은 카페에서 “음료를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는 등 큰 소리로 말했고, 직원들이 제대로 응대하지 않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려고 청소를 하려 보니 자리에 소변까지 묻어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소변이 다 스며들어 의자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됐다”며 “신고하란 의견도 많았는데 70대 초반 정도로 나이가 있어 보이고, 술도 드신 상태여서 고민된다”고 토로했다.

누리꾼들은 B씨가 현장에서 강경하게 대응했어야 한다는 댓글을 일부 남기기도 했지만, 자영업자들의 판단은 다르다.

현장에서 진상 고객에게 강경하게 대응한 뒤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더라도 상대가 온라인 카페나 지역 커뮤니티에 악성·허위 리뷰를 남기면 매출 감소로 직결되는 것. 입소문이 중요한 골목상권에서는 그 파급력이 막강하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사를 하다 보면 상상도 못 해본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며 “억지를 부리는 고객 정도면 무난한 편이다. 최근에는 매장에 들어와 유튜브를 촬영하는 경우도 많아져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손님은 왕으로 모시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사례가 우리네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난다”며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자영업자들은 그저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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