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을 향한 도발적 질문 "시장은 왜 당신을 안믿나"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입력 : 2023.01.29 16:12:12
파월 5년간의 발언 분석해보니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요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2018년 2월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5년간 미국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각국 정부와 전 세계 투자가들은 물론 개인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올해 초미의 관심사도 '미국이 언제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장 1월 31일~2월 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도발적인 질문을 한번 던져본다. 과연 그의 말은 믿을 만한가. 아이로니컬하지만 파월 의장이 2018년 2월 취임한 이후 한 말들을 살펴보면 그의 말에 100%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이유는 두 가지다. 그가 세상을 잘못 봤거나 그가 예측한 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취임 초기 파월 의장의 발언과 행동은 '매파'적이었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었던 재닛 옐런 전임 의장의 정책을 이어갔다. 파월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가계와 기업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 없이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준 목표치보다 높은 2~3%(전년 동기 대비)를 오르내렸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취임 후 첫 회의인 2018년 3월 FOMC에서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한 달 전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실제 행동도 같았다. 직설적 화법과 그에 맞춘 행동에 시장은 다소 놀랐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이후 공개 연설 때마다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의 발언대로 연준은 2018년 6월, 9월, 12월에 계속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렸다. 시장은 법률가 출신인 파월 의장의 직설적인 표현을 낯설어했지만 단순 명료한 새 의장의 대화 방식에 적응해갔다. 이처럼 파월 의장의 첫인상은 비교적 쉽게 읽히는 '경제대통령'의 모습이었다.





파월 의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당시 '정치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이 심해지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철학은 '저금리는 무조건 좋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이 취임 초 금리를 잇달아 올리자 그를 지명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골적인 비난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시진핑과 파월 중 누가 미국의 적인가'라며 파월 의장을 비난했다. 파월 의장은 2019년 6월까지 금리 인하를 거부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섰다. 그는 6월 초까지도 "금리 정책의 변화를 서두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6월 20일 FOMC 미팅에서 "무역과 글로벌 성장 우려 등 경제에 미치는 역류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완화적인 통화 정책의 근거가 강해지고 있다"며 시장에 금리 인하 메시지를 던졌다. 한 달 후인 7월 FOMC 회의에서는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6월 초와 6월 말의 발언이 다를 만큼 한 달도 안 돼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바뀌었고 메시지를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실제 금리를 내리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때를 전후해 파월 의장의 발언은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그는 7월 말 금리를 내리면서 "장기적인 연쇄 금리 인하의 시작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연준은 9월과 10월에도 잇달아 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렸다. 미국은 당시 3%대 실업률과 2% 안팎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어 금리 인하를 서두를 시기가 아니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현명함을 가장하지만 속으로는 정치에 굴복한 '올빼미파'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파월 의장을 둘러싼 금리 논쟁은 2020년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사라졌다. 메가톤급 쇼크로 미국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자 연준은 2020년 3월 한 달 동안만 금리를 1.5%포인트 내리며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을 폈다. 여기에 시중에 돈을 무제한으로 푸는 양적완화 조치까지 내놨다. 파월 의장은 연일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를 막겠다"며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센 발언을 내놨다. 파월의 제로금리 정책은 2020년 내내 이어졌다. 이 시기 물가 상승률은 1% 미만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4월 14%를 넘었지만 제로금리 정책으로 조금씩 낮아지면서 2020년 말에는 6%대로 떨어졌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파월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만 하는 '탱크' 같았다.

문제는 2021년 발생했다.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자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를 기록하며 연준 목표치를 넘어섰다. 그래도 파월 의장은 뒷짐을 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국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미치는 영향은 크거나 지속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상승 속도는 갈수록 더 가팔라졌다. 4월 미국 물가 상승률은 4.2%로 올랐고 5월에는 5%를 기록했다. 파월 의장은 여전히 "일회성 물가 상승으로 나중에 사라질 가능성이 큰 만큼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12월 7%까지 올랐다.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률은 2022년 말까지 연준 목표치인 2%에 가깝게 내려갈 것"이라며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파월 의장의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은 2022년 1월에 처음 나왔다. 물가 상승률이 7.5%까지 올랐을 때다. 그는 당시 "조건이 무르익는다면 3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연준은 3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파월 의장은 같은 해 4월 "5월 회의에서는 0.5%포인트 금리 인상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연준은 5월에 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5월 회의 직후 파월 의장은 "향후 회의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검토할 것"이라며 "0.75%포인트 금리 인상은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1%로 치솟았고 연준은 6월, 7월, 9월, 11월 등 네 번에 걸쳐 금리를 0.75%포인트씩 올렸다. 파월 의장은 긴축 가속페달을 밟기로 확정한 6월 이후에야 0.75%포인트 또는 그 이상의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놨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인플레이션 신호를 무시하면서 파월 의장은 정책에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준 의장으로서 경제에 대한 판단이 틀렸고 행동은 더 느렸고 시장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파월 의장의 5년간 발언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흐름이 보인다. 먼저 연준 금리 정책의 방향이 '인상' 또는 '인하'로 확정된 후에는 상당히 명쾌하고 직설적인 발언으로 시장과 소통했다. 금리 방향은 물론 폭까지 확실하게 얘기하고 실천했다. 반면 금리 정책의 흐름이 바뀔 때는 최적의 시점을 놓쳤고 시장과의 소통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향 전환에 대해 예고하지 않았고 실제 상황이 닥치면 일정 기간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내놨다.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소형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모함 같은 큰 배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소형차를 운전할 때는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을 때 핸들을 틀어도 바로 궤도가 수정된다. 하지만 큰 배를 운항할 때는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을 때 키를 틀면 원하는 길로 갈 수 없다. 신호를 예측하고 키를 돌려야 원하는 항로로 운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파월 의장은 민첩하고 순발력이 요구되는 소형차 운전자로서는 유능했지만 항공모함을 운전하기에는 예측 능력과 행동이 미흡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미국은 언제 금리를 내릴까. 파월 의장은 2022년 11월에 '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을 처음 꺼냈다. 그는 11월 말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이 12월 FOMC 회의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12월 FOMC 회의에서는 금리를 0.75%포인트가 아닌 0.5%포인트 올렸다. 회의 후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향해 지속적으로 내려간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채권 금리는 연일 하락하며 시장은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과거 파월 의장의 행적을 볼 때 시장이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것은 근거가 있다. 파월 의장은 단기적인 메시지에서는 직설적이고 정확했지만 6개월이 넘는 중장기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데는 인색했다. 또 메시지와 실제 행동도 달랐다. 시장은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파월 의장이 정치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 가장 민감한 경제 변수는 실업률을 비롯한 노동시장 환경이다. 경기 침체로 고용 환경이 악화되면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압력을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럼 파월 의장은 언제 금리 정책 변화와 관련한 메시지를 낼까. 과거 성향이 반복된다면 실제 금리를 내리기 전 한 달, 길어야 두 달 정도 전에 금리 인하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6개월 이상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이래저래 파월 의장의 발언은 경제 주체들이 허둥대지 않고 미래 환경 변화에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대통령의 말보다 경제지표와 분위기를 믿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기사 전문은 매경엠플러스(www.money-plu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2.06 05:15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