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를 매도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보고서’만 나오더니 [기자수첩]
최아영 매경닷컴 기자(cay@mk.co.kr)
입력 : 2023.11.22 14:58:32
입력 : 2023.11.22 14:58:32

“너 때문에 돈 잃은 주주들 생각해봤어?”
“야 이 OOOO야!” “얼마 받았어?”
대낮에 서울 여의도 한복판을 걸어가던 한 증권맨이 중년 투자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빠른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누군가 가방 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노란 어깨띠를 메고 손팻말을 든 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의 앞을 막는다. 어느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백주대낮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봉변을 당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죄는 올해 주가가 폭등한 2차전지 대장주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내놨다는 것이다.
악플이나 항의 전화야 그렇다 치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미와 애널리스트가 직접 대면하면서 발생하는 물리적 마찰은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단 개인 투자자들이 매도 보고서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싼 주식을 비싸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냐, 배후가 누구냐고 캐묻는 것이다.
이는 증권가의 ‘매수’ 일색 보고서 관행이 불러온 불신의 한 단면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 보고서 비율은 전체 보고서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기준 최근 1년간 국내 증권사 30곳이 낸 보고서 중 매도 의견 비율은 0.12%에 불과했다.
매도 의견을 매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장이다. 투자의견 ‘중립’이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통한다. 아니면 해당 종목에 대해 보고서를 쓰지 않는다. 저 매도 보고서도 올 하반기를 통틀어 해당 종목을 분석한 유일한 리포트였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매도 리포트가 적게 나오니 드문드문 나오는 매도 보고서가 큰 파장을 일으킨다. 투자자들이 흥분하고 애널리스트들은 위축된다. 매도 보고서는 더 적어진다. 그나마 용기를 내 매도 보고서를 썼다가 봉변을 당한다. 이렇게 1000건의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달랑 1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
당국에서는 매도 보고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독립리서치회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회의적이다. 연구원들의 태도와 투자자들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는 만큼 확실한 개선책이 시급하다. 개인들이 가짜 뉴스나 검증되지도 않은 블로그, 유튜브로 눈을 돌리겠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럴수록 ‘주식 환자’는 늘어나고 주식시장은 병든다.
매도 보고서의 활성화는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해 중요한 과제다. 지금이 살 때라고 하면서 팔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리서치센터의 독립성 확보, 자체 수익원 개발 등 대책이 난무하나 큰 틀에서 개인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사명감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행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자기가 투자한 종목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발상 자체가 퇴행적이다. 시장에는 그 많은 투자자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견해가 있고 자신의 견해도, 애널리스트의 견해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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