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령자에 ELS 무작정 권유 부적절"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박인혜 기자(inhyeplove@mk.co.kr), 김태성 기자(kts@mk.co.kr)

입력 : 2023.11.29 17:14:15 I 수정 : 2023.11.29 20:32:43
이복현 "피해 예방했다는데
자기 면피했다는 걸로 들려"
금감원, 상품 권유방식 문제땐
손실 책임분담 기준 마련 검토
라임·DLF 보상 재현 가능성
신한·농협銀 H ELS 판매중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은행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다했다고 이야기하는데, 피해를 예방했다기보다는 자기 면피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예고된 홍콩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은행들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자필 서명(자서), 녹음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았다고 해도 은행이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판매 과정에서 상품 권유가 적정한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으면 손실에 대한 책임 분담 기준 마련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날 선 경고에 앞서 은행권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판매를 중단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선 상태다.

29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은행들은 자필 서명과 녹취를 확보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를 안 했다고 보는 것 같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책임에서 자유로우려면 소비자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 가입 목적에 맞는 상품을 권유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원장은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은행권에 향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민원과 분쟁 상황을 선제적으로 챙겨보고 혹여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게 적절치 않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가 이뤄진 정황을 찾아내면 투자자들은 원금 일부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2021년 당국은 라임 펀드 사태 때 원금 100%를 돌려주라는 조정안을 내놨고,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에도 투자 손실의 최대 8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 원장은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을 지목해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8조원 규모를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건데 파생 총량 규제 한도가 가장 느슨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판매 규모가 이보다 작은) 증권사는 아예 한도가 없다"며 "수십 개 증권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를 한 은행에서 팔았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대해 은행권은 '손절'에 들어갔다. 신한은행은 홍콩H지수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작년 11월부터 홍콩H지수 편입 주가연계신탁(ELT)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다만 홍콩H지수 외 다른 지수 연계 상품은 유지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고령층 고객이 많은 점 등을 감안해 아예 ELS와 연계된 모든 상품을 지난달 4일부터 판매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홍콩H지수 기초 ELS와 관련해 7조8400억원대 상품 판매 잔액을 보유한 국민은행이다.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판매 금액이 높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ELS 판매 중단 여부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무더기 부실 우려가 커진 해외 대체투자와 사모펀드 사태 이후 업계 전반에서 무너진 신뢰 회복의 중요성에 대한 금융당국의 당부가 이어졌다. 이 원장은 "해외 대체투자 펀드의 적극적인 사후 관리와 충실한 투자금 회수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강조했다.

[유준호 기자 / 박인혜 기자 /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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