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금액 87% 원금보장형 유형분류에 '위험' 들어가 안전한 상품에 쏠림 부추겨 전문가들 "제도 개선해야"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2022년 7월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 취지와 달리 여전히 적립금의 87%(올해 1분기 말 기준)가 원금 보장형 상품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89%에 비해 2%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선 퇴직연금 기금화보다 디폴트옵션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액 44조8000억원 중 39조원이 원금 보장형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퇴직연금 운용을 지시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고 적립금을 묵혀두기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도입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 목소리가 반영돼 원리금 보장형도 디폴트옵션에 포함되면서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작년 디폴트옵션 유형별 수익률을 보면 초저위험은 3.3%, 저위험은 7.2%, 중위험은 11.8%, 고위험은 16.8%로 차이가 매우 크다.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예금과 채권 위주로 구성되는 저위험 유형까지도 원금 보장형인 초저위험과 수익률이 4%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 상승률도 못 따라가게 만드는 주범이 원금 보장형인 셈이다.
일각에선 디폴트옵션 유형을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이름 붙여 투자자들의 위험 기피 심리가 원금 보장형 선호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는 유형 분류가 안정형, 안정투자형, 중립형, 적극투자형으로 바뀌었다.
전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중 은행 비중이 80%이기 때문에 원금 보장형에 가입된 적립금이 많은 측면도 있다. 실제 은행 퇴직연금 적립금은 90.9%가 초저위험 상품이고,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58.1%만 초저위험 상품일 정도로 사업자 간 비중에 차이가 난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살리는 기금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DC형·IRP의 디폴트옵션 개선이 시간이 적게 걸리고 실효성도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퇴직연금 400조원 중 45조원을 차지하는 디폴트옵션이 수익률을 올리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다.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이직으로 인한 중도 인출 같은 유동성 이슈가 있기 때문에 기금화하더라도 국민연금 수준의 수익률을 내기 힘들다는 우려도 있다.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언제 늘어날지 모르는 인출에 대비해 투자 기간을 짧게 잡아야 하는 제약이 있어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은 호주의 경우 퇴직연금기금도 있지만 일단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외하고 있다. 가입자가 일정 기간 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금융회사가 비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자동 편입해 운영하며, 손실이 발생해도 금융회사에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