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 조치했단 은행들, 면피로 들려”…책임분담 압박한 당국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박인혜 기자(inhyeplove@mk.co.kr), 김태성 기자(kts@mk.co.kr)

입력 : 2023.11.30 07:42:26
금감원, 상품 권유방식 문제땐
손실 책임분담 기준 마련 검토
라임·DLF 보상 재현 가능성

신한·농협銀 H ELS 판매중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금융감독원]


“은행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소비자 피해예방 조치를 다 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피해를 예방했다기 보다는 자기면피 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규모 손실가능성이 예고된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은행들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자필 서명(자서)와 녹음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았다하더라도 은행이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했어야 했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판매 과정에서 상품 권유가 적정한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을 경우 손실에 대한 책임분담 기준 마련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날선 경고에 앞서 은행권은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주가연계증권)에 대해 판매를 중단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선 상태다.

29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은행들은 자필 서명과 녹취를 확보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를 안 했다고 보는 것 같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책임에서 자유로우려면 소비자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서 가입 목적에 맞는 상품을 권유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노후보장 목적으로 만기 예·적금을 재투자하려는 고령 투자자에게 수십 %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맞느냐”며 “상품에 대한 설명을 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절했는지 등 적합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은행권에게 향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민원과 분쟁 상황을 선제적으로 챙겨보고 혹여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책임분담 기준을 만드는 게 적절치 않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가 이뤄진 정황을 찾아내면 투자자들은 원금 일부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2021년 당국은 라임 펀드 사태 때 원금 100%를 돌려주라는 조정안을 내놨고, 2019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때에도 투자 손실의 최대 8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었다.

이 금감원장은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을 지목해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8조원 규모를 KB국민은행에서 판매한 건데 파생 총량 규제 한도가 가장 느슨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판매 규모가 이보다 작은)증권사는 아예 한도가 없다”라며 “수 십 개 증권사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규모를 한 은행에서 팔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후 자금을 가지고 신뢰와 권위 상징인 은행 창구로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희가 아니라 은행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그런 고민이 있다면 지금처럼 100%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완료됐다는 언행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주가연계증권)에 대해 은행권은 ‘손절’에 들어갔다. 신한은행은 H지수가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자 작년 11월부터 H지수 편입 ELT(주가연계신탁)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다만 H지수 외 다른 지수 연계 상품은 유지중이다.

NH농협은행은 고령층 고객이 많은 점 등을 감안해 아예 ELS와 연계된 모든 상품 판매를 지난 10월 4일부터 판매하지 않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KB국민은행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 전이다. 원금손실 우려가 생기면서 ‘제2의 DLS(파생결합증권)사태’로 번질 우려가 커지면서 아예 ELS 관련 상품 판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워낙에 판매액(400억원대)이 적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H지수가 편입된 상품은 작년 12월 이후 없고, H지수가 기초자산으로 편입된 ELS는 작년 모두 조기상환이 완료됐다.

문제는 7조8400억원대 H지수 기초 ELS 관련 상품 판매 잔액을 보유중인 KB국민은행이다.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판매금액이 높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ELS 판매 중단 여부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H지수 편입 ELS 관련 상품은 대부분 2021년 판매가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 규모만 4조 7700억원이다. 2021년 2월 19일 1만2228.63까지 올랐던 H지수는 2022년 11월 4일 4938.56까지 떨어져 60%가까이 폭락했다. 이후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5000선대 후반~6000선대 초반선에 머물고 있다. 매일경제 확인 결과 KB국민은행의 경우 손실확률이 높은 판매 상품의 경우 H지수가 8500까지 반등해야 손실을 보지 않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무더기 부실 우려가 커진 해외 대체투자와 사모펀드 사태 이후 업계 전반에서 무너진 신뢰 회복의 중요성에 대한 금융당국 당부가 이어졌다. 이 원장은 “해외 대체투자 펀드의 적극적인 사후관리와 충실한 투자금 회수에 만전을 기해달라”며 “수익률 몇 퍼센트를 잃는 것은 펀드 하나를 잃겠지만 투명성을 잃으면 회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준엄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7.15 20:31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