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안개 심할땐 차 세워야"… 금리인상 카드 남겨뒀다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양세호(yang.seiho@mk.co.kr)

입력 : 2023.02.23 17:43:34 I 수정 : 2023.02.23 22:51:33
1년6개월만에 인상기조 중단
금통위원 6명중 5명은
최종금리 3.75% 가능성 주장
수출·소비 동반 위축에
올 성장률 전망 1.6%로 낮춰




◆ 한은 기준금리 동결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1년6개월 만에 금리 인상 기조를 중단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강도 긴축 기조를 유지해온 한국은행이 23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는 국내 경기와 불확실한 세계 경제 움직임을 먼저 고려했기 때문이다. 올해 경제를 지탱할 것으로 기대된 내수는 갈수록 위축되고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해제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도 예상을 하회할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한은은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결정이 '숨 고르기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시장에선 지난 1년6개월간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3.5%인 기준금리 수준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여러 불확실성 요인을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2021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1년 반 동안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두 번이나 밟는 등 11번 회의에서 10번이나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유례없는 긴축을 단행했다. 작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제블록화 등 영향으로 공급망이 막히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가 대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지난달 생산자물가도 전월보다 0.4% 올라 3개월 만에 반등했다.





이처럼 물가 상승 리스크가 여전한데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국내 경기 상황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 전망을 내놓으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1.6%로 예측했다. 불과 3개월 전 나온 예측치인 1.7%보다 떨어진 것이다.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IT) 산업 경기가 부진하고 국내 부동산 시장 침체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작년 4분기 이후 수출과 소비가 예상보다 부진해 올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연착륙 등 호재가 없었으면 경제성장률은 1.5%를 하회했을 것이라는 게 한은 설명이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을 내놓으며 주요국 성장세를 상향한 것과 달리 한국 성장률은 당초 2.0%에서 1.7%로 낮추기도 했다. 민간소비는 고물가·고금리로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당초 2.7%에서 2.3% 성장으로 꺼졌다. 건설투자 항목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0.2%에서 -0.7%로 역성장 폭을 키웠다.

다만 이 총재는 이번 결정을 지나치게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며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를 봐야 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당분간 최종 금리를 3.75%로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본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가늠하게 한다. 금리 인하로 전환하는 '피벗'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치인 2%에 수렴하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진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벌어질 것이 확실시되는 한미 간 금리역전 폭도 한은에는 부담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 이때 현재 1.25%포인트인 한미 금리 차이는 최소 1.5%포인트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향후 추가 인상 폭에 따라 2%포인트까지 벌어져 국내 자본이 이탈하고 원화가 절하될 수 있다는 염려가 제기된다. 이 총재는 "금리 격차가 몇 %포인트면 위험하다는 식의 기계적인 수치는 없다"면서도 "미국과 갭(차이)이 너무 크게 벌어질 때 시장에 주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 결정 후 한 차례 추가 인상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조사팀장은 "2000년 이후 국내 금리 수준과 거시지표, 해외 주요국 금리와의 상관관계를 감안하면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올해 말 기준금리가 4%까지 오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통화정책을 감안하면 한 차례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며 "영세기업과 중소기업이 어렵기 때문에 4%까지는 인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시장에선 긴축이 끝났다는 전망도 나온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해와 같은 물가 대응을 위한 기계적인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한은이 올해 성장률과 물가를 0.1%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는 것은 올해까지 금리가 동결될 것이란 부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아그리콜도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연내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류영욱 기자 /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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