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코인 돈세탁'해도 추적 가능해진다

채종원 기자(jjong0922@mk.co.kr)

입력 : 2023.02.28 17:52:46 I 수정 : 2023.02.28 18:56:39


A씨는 2021년 3~4월 보이스피싱 현금 인출·전달책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업비트 계정을 개설했다.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 B씨 말에 속은 피해자 4명은 총 4595만원을 A씨 계좌로 보냈다. A씨는 이 돈으로 가상자산(코인)인 이더리움을 구매한 뒤 이를 B씨가 지정한 전자지갑으로 전송했다.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이 지난 1월 가상자산 구매대행 혐의로 A씨를 기소한 이 사건처럼 최근 송금 받은 피해금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추적을 피하는 보이스피싱 유형이 증가하고 있다.

보안·절차 강화로 은행을 통한 보이스피싱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2021년 대비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건수와 피해 금액은 각각 29% 줄었다. 반면 직접 만나 돈을 받거나 보이스피싱을 신고해도 지급 정지가 불가능한 가상자산거래소나 선불업을 활용한 범죄는 오히려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일 출금 제한, 지연 출금으로 범인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뽑을 경우 검거 가능성이 높아지자, 범죄 자금 출금이 쉬운 가상자산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와 국민의힘은 28일 당정협의를 통해 가상자산거래소와 선불업자도 은행과 동일하게 계정 정지, 정보 공유를 비롯한 피해구제 절차를 적용 받도록 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보이스피싱법) 개정안을 오는 4월 발의하고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에게 금융위가 제출한 최근 3년간(2020~2022년) 보이스피싱 관련 가상자산 계정 정지 현황에 따르면 총 발생 건수는 1318건, 피해액은 446억원에 달했다. 이는 금융사가 업비트, 빗썸을 포함한 5대 가상자산거래소에 계정 정지를 요청한 사례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휴대전화 수리를 비롯한 여러 명목으로 돈을 계좌로 받은 뒤 이를 재빠르게 가상자산으로 바꾸는 경우가 대표적 유형이다. 피해자 신고로 은행 계좌의 지급 정지가 이뤄지기 전에 돈을 빼내는 방식이다. 다른 유형은 앞선 A씨 사례처럼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구매대행자를 구한 뒤 대행자를 거쳐 가상자산으로 받는 경우다.

현행 보이스피싱법에선 범인이나 구매대행자가 가상자산을 구매한 순간부터 가상자산거래소에 있는 범인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가 불가능하다. 은행이 관리하는 금융 계좌가 아닌 가상자산거래소가 관리하는 가상자산 계좌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또 피해자가 범인의 전자지갑으로 가상자산을 직접 보낸 경우 전자지갑 주소만으로는 어떤 거래소에서 이를 관리하는지 알기 어려워 계정 정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범인이 가상자산을 구매한 거래소에서 다른 거래소로 한 번만 옮겨도 추적이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정부·여당은 법을 개정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가상자산으로 전환돼도 범인의 가상자산 계정을 정지하고 피해금까지 환급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범인이 피해금을 쉽게 현금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 가상자산을 다른 가상자산거래소나 전자지갑으로 전송할 땐 숙려 기간(최초 원화 입금 시 72시간·추가 원화 입금 시 24시간)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 기간 피해자가 범죄를 인식하고 신고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향후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가상자산 시세 변동에 따른 피해금 환급 규모를 어떻게 정할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카카오톡 송금'처럼 간편송금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관련 대책도 나온다. 금융위에 따르면 간편송금을 통한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2018년 7800만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42억원까지 늘었다.

간편송금 보이스피싱의 문제점은 카톡으로 10만원을 보낼 때 상대방이 어떤 은행 계좌에 연결돼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을 인지해도 범인이 사용한 은행 계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카카오에 먼저 연락해 송금확인증을 받아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보통 2~3일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범인은 돈을 인출해 간다. 당정은 보이스피싱 신고 때 간편송금 사업자가 은행에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해 피해금이 어느 은행으로 갔는지 신속히 알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통장협박'이라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대응 방안도 마련한다. 이 범죄는 예를 들어 펜션 주인이 홈페이지에 예약용으로 공개해 둔 은행 계좌에 10만원을 넣은 범인이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경우다. 펜션 주인은 본인 계좌의 입출금이 정지되면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범인은 300만원을 보내주면 해지해주겠다고 펜션 주인을 속인 뒤 돈만 받고 떠난다.

이에 금융위는 종합적으로 판단해 통장협박 피해 계좌라고 판단되면 지급 정지를 일부 해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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