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이비인후과도 발달센터 개설…월 1억원 빼먹는 동네병원

신찬옥 기자(okchan@mk.co.kr)

입력 : 2023.03.01 21:57:45
27일 서울시내의 한 소아 청소년 상담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입구에 발달장애·언어지연 등 진료 과목이 표시돼 있다. 2023.02.27 [박형기 기자]


지난 2020년 99㎡(30평) 규모로 개원한 경기도 H의원은 같은 해 11월 3배가 넘는 크기의 아동심리발달센터를 열었다. 넉달 후에 99㎡ 규모의 2관을 추가로 오픈했고, 2021년 9월에는 전체 병원·발달센터보다 큰 규모의 아동심리연구소도 만들었다.

27일 매일경제가 A보험사의 최근 5년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금 청구내역을 분석한 결과, H의원에서는 2021년 발달지연 치료비 명목으로 A보험사에서만 월평균 6700만원을 받았다. 2022년에는 매달 1억2700만원, 최근 3개월 동안에는 월평균 1억3400만원을 청구했다. 손해보험 업계 전체로는 지난 3년간 이 의원에 30억원이 넘는 실손 보험금이 지급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A보험사에 따르면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 청구 상위 50개 의료기관들은 H의원처럼 매달 4000만원에서 1억원 이상을 청구하고 있었다. 이 중 절반인 25개 의원은 2020년까지 관련 보험금 청구가 ‘0원’인 곳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동들의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있는데다 최근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진료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그러나 일부 의원에서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여러 정황들이 포착됐고, 경찰에서도 이들을 보험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실손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진단(R62)이 이례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R코드 보험금 청구는 꾸준히 늘다가 올들어서는 그간 실손보험료 인상 주범으로 지목됐던 백내장이나 도수치료 청구액을 넘어섰다. 지난 1월 기준 A보험사의 비급여 보험금 청구 1위가 R62이다. R62 코드는 2021년 A사 전체 실손보험금의 2.8%를 차지했지만 2022년 4.1%, 올 1월에는 4.9%까지 증가했다. 매달 이 회사가 지급하는 보험금만 78억원, 1년이면 930억이 넘는다.



이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의원들까지 앞다퉈 부설 발달센터를 개설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들 센터에서는 언어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이런 치료는 복지센터, 사설센터, 병원 부설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데 회당 비용이 7만~10만원이나 된다. 정부가 제공하는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활용할 수 있지만, 몇 년씩 꾸준히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병원들은 이 점을 노려 실손보험이 있는지 물어보고, R코드로 진단서를 발급한 뒤 부설 발달센터로 넘긴다. 일부 의원 발달센터에서는 실손 통원 한도에 맞춰 ‘1일 25만원’짜리 프로그램까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실손보험은 통상 1일 25만원, 연간 180일 한도로 통원 보험금을 보장한다. 가입자 1명당 1년에 4500만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명확한 치료 기준이나 횟수 제한이 없다보니 새로운 실손 빼먹기 수법으로 급부상했다고 손보업계는 주장한다.

실제로 관련 보험금 청구가 매년 70~80%씩 늘어나고 있고, 전년대비 보험금이 많게는 385배 증가한 의원도 있었다. 손보 업계는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5년 안에 발달지연 관련 실손 보험금만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일부 의원에서는 ‘과잉진료’ 의혹도 포착됐다. 통상 1년이면 원인질환을 찾거나 정상발달로 돌아가는데, 실손 보험금을 받기 위해 길게는 2~3년씩 치료 기간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가 발달지연이 아님에도 어린이집 하원 이후 학원 대신 발달센터에 보내는 경우가 보험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허위 치료비는 다른 실손 가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보험금을 받기 위한 절차나 심사가 강화되면서 정말 필요해서 치료받은 부모와 아동까지 피해를 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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