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文정부 ‘탈원전’ 출구전략 가능성에...‘원전축소’ 속내 복잡해진 與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입력 : 2025.01.18 19:49:50
신규 원전건설 1기 축소 계획을 담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동안 원전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탈탈원전’에 힘을 쏟았던 정부 입장에서는 야당과의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고육책’을 제시한 셈이지만 안을 받아든 야당 의원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여당 입장에서도 정부가 꺼내든 원전 축소 방안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태다. 여야간 복잡한 셈법 속에 국가 에너지대계인 전력수급 계획은 장기 표류 중인 상태다.

“이러다 하나도 제 때 못 짓는다”···고육책 꺼내든 정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정책조정위 회의를 열고 정부로부터 11차 전기본 조정안에 대한 상세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2038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4기(소형모듈원전 1기 포함)에서 3기로 축소하고, 태양광 발전을 2.4기가와트(GW) 추가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전력수급의 기본방향을 정하는 행정계획이다. 전기사업법에는 ‘국회 동의’가 아닌 ‘국회 보고’로 절차가 규정돼 있지만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야당이 국회 보고 일정을 잡지 않으면서 계획을 확정 짓지 못했다.

정부가 야당 주장을 수용해 전기본 조정 방안을 마련한 것은 일정이 더 이상 지연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원전 건설 과정에 13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전기본 확정이 미뤄지면 다른 신규 원전 건설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신규 원전 1기를 포기하더라도, 나머지 3기를 제때 공급하기 위한 고육책을 제시한 셈이다.

野 에너지간담회선 “이념이 에너지문제 해결 못한다”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다. 조정안을 받은 야당은 우선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했다. 정부로부터 조정안에 대한 공식 설명을 들은 야당은 바로 국회 보고일정을 잡지 않은 것도 바고 그 이유에서다.

지난 14일 정책조정위 회의는 야당 소속 의원들의 에너지정책 스펨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신규 원전 1기를 줄이는 정부의 조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재생에너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의원도 나왔다. 특히 정부가 전원을 특정하지 않고 유보로 잡아둔 4.6GW의 설비 용량을 재생에너지로 못 박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부안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16일에는 당 차원의 에너지간담회까지 열렸다. 당초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원전 정책에 대한 당론 교통정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지만 이 대표는 다른 일정이 겹쳐 최종 불참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는 에너지정책에 대한 ‘탈이념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왔다. 발제를 통해 임현택 광주과학기술원 에너지융합대학원 교수는 2050년 에너지자립국을 목표로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경제상황점검단 단장인 이언주 최고위원이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에너지 믹스 대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언주 의원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에 대한 ‘양시론(모두가 옳다)’으로 당이 에너지문제를 보는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산업의 추세적 변화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발맞춰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모두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 교수는 강화된 안전 기준만 충족하면 원전 신규건설과 수명연장 등 원자력 중흥에도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념이 에너지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며 “탐욕스러운 자본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를 주최한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개회사를 통해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위해서는 에너지 정책의 탈정치화와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초전력 첨단전략산업의 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발전원별 전력수급 상황과 발전원가 분석 등을 통해 실용적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도 평가한다. 이 대표도 최근 들어 ‘실용주의’를 강조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영광군수 선거 유세 중 “정치는 원칙만 따져서는 안된다”며 영광 원전의 가동 연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낸 바 있다.

정부안 반길 수도 없고···머리 복잡한 與
여당인 국민의힘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당정은 그동안 원전 생태계 복원과 신규 원전 건설 확대로 정책 보폭을 맞춰왔는데, 정부가 친원전 정책 후퇴를 의미하는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여당이 정부의 조정안을 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정부의 조정안에 대해 여당이 바로 동의를 해버리면 그 반대 급부로 민주당이 더 강하게 원전 축소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이같은 여론이 일부 확인된 상태다. 앞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엉터리로 원전 계획을 축소했다가는 국가적 에너지 대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며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이 되는 계획을 이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해서 되겠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기본은 국회 소관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보고하는데 여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 과반을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 수는 있지만 안건이 상정되지 않으면 보고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며 “안건 상정이 여야 간사가 합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시가 급한 정부의 속사정을 아는 여당으로서는 마냥 발목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신규 원전 1기 축소에 대한 반대 메시지는 분명히 하면서도 국회 보고 절차는 정상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1.18 22:06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