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먼저 경험한 日기업들…도시바 몰락하고 올림푸스 날아오른 사연은

우수민 기자(rsvp@mk.co.kr)

입력 : 2025.03.09 20:44:26
주주수익률 낮은 기업 대다수
비핵심 사업 과하게 끌어안아

올림푸스·삿포로 등 日기업은
행동주의에 자본효율화로 대응
위기를 변혁기회로 활용 평가

행동주의에 기업가치 빠지기도
기업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


일본 광학기업 올림푸스. 2017년 미국 행동주의펀드 밸류액트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다. 밸류액트캐피털은 올림푸스 지분 5%를 확보하자마자 파트너인 로버트 헤일을 이사회로 진입시켰다. 이후 올림푸스는 2020년 20년간 영위해오던 디지털카메라사업을 매각하고, 2022년에는 회사의 모태였던 현미경사업부를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에 넘겼다. 그리고 수익성 높은 내시경 사업에 집중하면서 2019년 이후 올림푸스 주가는 3배 가까이 올랐다.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광범위한 행동주의 캠페인을 경험하며 기업들이 총주주수익률(TSR) 중심의 경영관리체계를 확립해왔다. TSR은 주가 상승과 배당 수익률을 결합해 실질적으로 회사 주주들에게 투자 대비 돌려준 가치를 나타낸다. 기업이 경제적 수익을 일구면서도 그 성장이 지속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TSR을 결정짓는 요소로는 매출이나 이익 성장 외에 기업가치 배수(멀티플), 잉여현금흐름이 있다. 당장 매출이나 이익 같은 단기 성과를 창출하더라도 미래 성장을 놓친다면 멀티플이 깎이면서 TSR이 낮아질 수 있는 셈이다.

행동주의에 취약한 기업은 업계 평균이나 경쟁사에 비해 TSR이 낮다는 특징이 있다. 상당수가 매출에 기여하지 않거나 미래 가치로서 멀티플을 높여주지 않을 사업과 비영업 자산을 과하게 끌어안고 있는 경우다.

행동주의에 경각심을 가질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점검해야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집중도, 즉 자본 효율성이 TSR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벌어들이고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적인데 사업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광범위할 경우, 사업 간 시너지 효과가 작거나 각 사업 포지셔닝이 불분명해 자본 배분 우선순위가 모호해진다. 부실 사업이나 무거운 자산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소니, 올림푸스 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자본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함으로써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맥주로 잘 알려진 삿포로홀딩스는 2023년 싱가포르계 행동주의펀드 3D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로부터 경영개선을 요구받았다. 3D 측은 삿포로가 부동산사업 이익을 숨기기 위해 핵심사업인 주류와 식음료 부문 저수익성을 방치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리고 삿포로홀딩스 부동산 가치를 약 40억달러로 평가하며 자산 매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삿포로홀딩스는 지난해 2월 도쿄 에비스가든플레이스와 긴자 등에 보유한 부동산 매각 검토 방안을 발표했다. 부동산 매각으로 얻은 자본은 맥주사업 인수·합병(M&A)에 활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1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다.

일본 소재기업 레조낙(구 쇼와덴코)은 행동주의 캠페인의 타깃이 됐던 건 아니지만 2019년 히타치케미컬을 인수한 이후 여러 비핵심사업을 매각했다. 히타치케미컬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2020년 발표한 ‘신규 통합 기업 장기 비전(2021~2030)’에 따라 지난해 9월 재생의학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 부문을 미국 헬스케어 전문 투자회사 알타리스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2200 선에 머물던 레조낙 주가는 현재 3500 선을 웃돌고 있다.



조정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는 “행동주의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집중을 잃고 투자가 지연돼 기업가치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기업 스스로 행동주의처럼 먼저 생각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모든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이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2023년 말 상장폐지된 일본 대표 기업 도시바가 대표적이다. 도시바는 2015년 불거진 회계부정과 2017년 원자력 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거액 손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도시바는 핵심 사업부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 지분 50%를 한·미·일 컨소시엄에 넘기고 유상증자를 통해 에피시모캐피털 등 행동주의펀드에 손을 벌렸다. 이후 경영 체질 개선보다는 무리한 주주환원 확대에 치우치면서 주요 경영 의사결정이 지연됐다. 결국 회사는 행동주의펀드 자금을 유치한지 6년 만에 JIP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실제로 행동주의펀드 공격을 받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TSR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행동주의 공격을 받았던 기업 가운데 75%는 1년 이내에 TSR이 오히려 감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TSR 증가폭이 가장 떨어졌던 하위 25%는 TSR이 되레 평균 24% 뒷걸음질쳤으며 26~75%에 해당하는 중위그룹은 역시 TSR이 평균 4% 떨어졌다.

기업이 행동주의 위협에 앞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펀드로부터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을 요구받으면서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을 줄이거나 연구개발(R&D)·자본지출(CAPEX)을 줄이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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