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오명 벗어던진 중국…한국 앞서던 분야도 추월 “AI 100년 뒤처질것”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입력 : 2025.03.11 06:03:05
12대산업 글로벌 종합경쟁력 분석

韓수출 투톱도 경쟁력은 ‘중’
로봇·바이오 등 미래 산업은
R&D·수요 등 전부문 열위

인공지능 위력 과시한 증국
양자·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

“민간 주도형 韓산업육성 틀 깨야”


조선업 망한 부산 영도의 한 조선업 영세업체의 수리조선소. [박동환 기자]


중국이 선진국 기술을 쫓아가는 ‘추격자’에서 이제 첨단 기술을 주도하는 ‘선도자’ 모델로 전환하면서 한국의 미래 먹거리에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은 자금과 인력, 인프라스트럭처 등 정부 주도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한국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양자 기술, 바이오는 물론이고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우리가 두각을 나타내왔던 분야마저 중국에 설 자리를 뺏기고 있다. 여기에 더해 철강과 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 산업은 중국이라는 ‘외풍’에 강제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의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10일 매일경제가 산업연구원에 의뢰해 공동 분석한 결과 12대 주요 산업에서 글로벌 종합경쟁력이 높은 분야는 조선과 디스플레이, 가전 등 3개 산업에 불과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 화학 등 주력 수출 업종은 글로벌 종합경쟁력이 ‘중’ 수준에 머물렀고, 로봇과 바이오헬스, 3D프린팅 등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 분야는 종합경쟁력이 ‘하’에 그쳤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동시 생산하는 기업인 포스코퓨처엠 연구원들이 세종시에 위치한 에너지소재연구소에서 시험용 배터리를 활용해 양·음극재 특성을 테스트 중이다. [김호영 기자]


특히 주력 산업에서 생산은 주요 경쟁국 대비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연구개발(R&D)·설계와 조달, 수요 측면에서는 경쟁력 저하가 두드러졌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력 산업의 경쟁우위 여건이 크게 변화되는 가운데 하드웨어·제조 경쟁력은 확보했지만 설계·서비스 융합 역량은 뒤처지는 상태”라며 “유망 품목인 3D프린팅, 시스템반도체, 2차전지 등에서 경쟁력 열위로 평가되며, R&D와 공급망 안정성에서도 취약해 국내 생산 기반 형성이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반면 중국은 2006년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리면서 첨단 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본격화했다. 16대 국가 중대 과기 전문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인 기술 전략을 시작했고, 2010년대부터는 ‘중국제조2025’를 앞세워 그동안 쌓은 기술 개발의 성과를 산업화로 연결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R&D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8.3% 늘어난 4963억달러(약 716조원)로 집계됐다. 내수 침체 등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AI와 양자컴퓨팅, 바이오 기술 등 첨단 분야의 R&D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한국의 연간 R&D 투자액 1075억달러의 4.6배에 달한다.



저품질의 제품을 저가에 공급한다는 중국 산업에 대한 고정관념도 부서졌다. 중국은 2014년부터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세우고 국산화·산업화를 추진했다. 현재 중국의 낸드 메모리 기술이 한국 턱밑까지 쫓아왔고, 고집적 메모리, AI반도체, 전력반도체, 차세대 센싱 등은 한국을 앞섰다는 평가가 있다.

중국은 특히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약진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한국의 15배 이상인 3500개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가 운영 중이다. 국제고체회로학회에 채택된 중국 연구자의 논문 수는 2023년 기준 59건으로 한국 32건, 대만 23건, 일본 10건을 추월했다.

AI 분야도 중국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AIPRM에 따르면 2023년 수준으로 AI 투자가 이뤄질 경우 2030년 미국과의 기술 격차는 중국은 14년, 한국은 183년으로 나타났다.

2차전지 역시 기술, 장비, 소재 등 모든 영역에서 중국은 90%에 가까운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광물 제련 단계에서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0~90%에 이르고, 음극재, 양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대부분 부품 제조 단계에서도 55~8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 [신화 = 연합뉴스]


한때 배터리 업계에서는 중국 CATL이 집중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는 세계 시장 제패가 어렵다고 봤지만, 낮은 가격과 에너지밀도 개선을 무기로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선택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한국 3사가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에 대해 중국은 중간 단계 격인 반고체 배터리로 대응하고 있는데, 반고체 배터리의 개발·탑재까지 성공했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로 바로 가려던 한국 기업들은 거꾸로 반고체 개발을 고민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투자까지 진행한 상태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6대 미래 산업 육성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자국을 2027년까지 세계 미래 산업의 전략적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6일에는 AI와 양자과학·기술, 수소 배터리 등 첨단 산업 투자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2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설립·운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서행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인력, 연구비 등 대규모 역량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타국은 구축하기 어려운 대규모 연구 인프라스트럭처를 단기간에 구축하고 있다”며 “국가 주도의 일관된 정책 방향과 투자를 유지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에 연구 자원을 집중 개발해 성과를 제고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산업의 큰 흐름을 민간 기업들이 이끌어가도록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데만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과거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항공기, 조선 등 산업 전반을 정부 주도로 진행됐던 구조조정은 자취를 감췄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일부 산업에 위기가 와도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 과거와 같이 산업 재편에 대한 절실함이 덜한 상황”이라면서도 “세계 주요국들이 미래 산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뒤로 물러나 있고, 민간에 맡기는 형태로만 접근해 왔던 산업 정책을 우리도 새로 가다듬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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