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소송 기준 개정 추진 불명확한 소송제기 기준 구체화 통해 실효성 높여 소송대상 기업명단 작성 현행 이원화된 소송주체 수탁자책임위로 일원화 대선정국 쟁점부상 가능성
국민연금이 그간 사문화됐던 대표소송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 기준 개정을 추진한다.
6일 각계 책임투자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대표소송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담은 소송 기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에 대한 책임 추궁을 게을리할 경우 주주가 회사 대신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을 뜻한다.
국민연금은 2019년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2020년 상법 개정을 바탕으로 2023년에는 다중대표소송(모회사 지분으로 자회사 이사에게도 소송 가능)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현재는 소송 제기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업 명단도 작성해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은 승소 가능성,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등을 함께 고려해 대표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발간한 '책임투자를 위한 정책, 계획, 조직 및 활동내역'에도 이 같은 계획을 명시했다. 이 보고서는 2021년부터 매년 발간되고 있는데, 계획에 대표소송 관련 내용이 담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가장 먼저 논의될 사안은 소송 기준을 명확히 해 대표소송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현행 지침은 제소 결정 기준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정해둬 오히려 소송 제기를 어렵게 한다는 게 정부와 국민연금의 인식이다.
소송 기준을 구체화하기 위해 기업 이사가 정관을 위반한 행위가 최종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경우 대표소송 대상으로 삼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민연금이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제기 주체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것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소송 실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맡되 소송 제기 의사결정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의 수책위가 담당하도록 일원화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내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되 판단하기 곤란해 수책위에 요청하거나 수책위가 회부를 요구한 경우 수책위에서 결정하게 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체가 기금운용본부와 수책위로 이원화돼 있어 어느 한 곳도 책임을 지고 첫 소송 사례를 만들고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이같이 대표소송 기준 개정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데,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서 기준 개정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자본시장과 주주 권익에 대해 특히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도입을 주도해왔으며, 최근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정부의 대안(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무시한 채 상법 개정 도입을 강행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자는 국민의힘 주장에도 동의한 바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금투세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이 대표가 폐지 입장을 밝힌 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금투세 도입은 최종 무산됐다.
대표소송을 제기할 기업 후보군을 추려놓고도 제소가 이뤄지지 않아 소멸시효가 지나는 사건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당국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국민연금이 회사를 대신해 주주로서 회사에 피해를 끼친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 본래 '주주대표소송'이란 용어가 쓰였지만 자회사의 이사까지 대상으로 삼는 '다중대표소송'이 추가되며 이를 아우르는 '대표소송'으로 부르게 됐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율이 5% 이상이거나 보유 비중이 1% 이상인 곳을 대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