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전기고속도로' 내년 완공 물 건너가…"이대로면 수도권 대정전"

'변전소 증설 불허 위법' 행정심판에도 하남시 "주민동의부터" 고수수도권 전력 수요 급증하지만 전기 나를 길목 막혀…"중앙정부 조정 필요"
차대운

입력 : 2025.05.04 07:01:01


동서울발전소 옥내화 및 HVDC 건설 계획 개념도
[한국전력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원전 등 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핵심 수요지인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해 진행 중인 대형 국책사업 '전기 고속도로'의 내년 건설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동해안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송전선로 건설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전기 고속도로'의 종단인 서울 문턱에 있는 하남시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음에도 지역 주민 반대를 이유로 변전소 증설 공사 허가를 계속 내주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으로 수도권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력 공급 대폭 확대를 위한 송전선로 확충이 적기에 못 이뤄지면 수급 불일치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4일 한국전력과 하남시 등에 따르면 하남시는 동서울변전소 증설 공사를 하려는 한전에 지역 주민의 동의를 먼저 받아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10여개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일일이 설득해오라는 취지인데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닐뿐더러 사실상 공사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앞서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작년 12월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공사 불허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한전이 청구한 행정심판 청구를 인용한 바 있다.

행정심판은 법적으로 그 결과에 따라야 하는 기속력이 있다.

그렇지만 하남시가 사실상 행정심판 이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전 임직원들이 하남시 앞에서 릴레이식 1인시위에 나서는 등 양측 간 갈등이 깊어진 상황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과 이현재 하남시장이 지난달 24일 만나 담판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남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한전이) 주민들과 최대한 협의하라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하남시는 지난달 29일 한전의 기존 변전소 시설 옥내화 공사에 관한 건축 허가만 따로 떼 내 준 것으로 확인됐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운영 및 건설 상황
[한국전력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한전은 동서울변전소에서 2026년 6월까지 기존 시설을 우선 옥내화해 확보한 공간에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통해 들어올 추가 전기를 받아 수도권 일대에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소를 새로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남시가 기존 시설 옥내화 건축 허가만 해주고, '전기 고속도로'를 통해 넘어오는 새 전기를 받을 변환소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사실상 사업 전체 허가를 계속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한전의 입장이다.

다른 한전 관계자는 "동서울변전소의 옥내화는 새 변환소 건설 용지 마련을 위한 것인데 변환소 건설이 없이 옥내화 공사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전기 고속도로 사업은 수도권으로 전력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도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총 17.9GW인데, 송전 가능량은 10.5GW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도 일부 발전소들은 설비를 놀리고 있다.

일부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의 송전망 확충 지연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법적 대응에까지 나선 상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송전선로
[촬영 차대운]

거꾸로 수도권에서는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AI 데이터센터 증설,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총 8GW(기가와트) 용량으로 건설 중인 동해안 전기 고속도로는 오랜 사업 지연 끝에 최근 건설이 가시권에 들었다.

이미 착공돼 건설 중인 신가평변환소로 4GW가, 동서울변환소로 4GW의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고속도로 종단에서 전기를 받아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해줄 동서울변환소 건설이 지연되면 당초 계획의 절반인 4GW의 전기만 옮기게 된다.

즉 4GW의 발전력이 감소한 셈으로, 이는 설비용량 1.4GW인 최신 원전 3기가 만드는 전기를 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목표한 2026년까지 8GW 규모의 동서 방향 '전기 고속도로'가 온전히 가동되지 못하면 2030년 이후 울진에 건설될 신규 원전인 신한울 3·4호기의 전력망 연계도 어려워질 수 있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사업 개요
[한국전력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동서울변전소 확충 문제가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라 수도권 전력 수급 불균형에 따른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 문제여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수도권의 전기 수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설비 증설과 데이터센터 증가 등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변전소서 병목 현상이 생기면 수도권 대정전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지하철이 서고, 병원에서 응급환자가 수술을 못 하는 스페인 대정전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한전과 하남시 간의 대화로는 더는 해법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며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새 정부 출범 후 국무총리실 주재로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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