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3년] ① 놀이동산에 밀려나 방치된 선사 유적…'미완의 개장'

테마파크 승인 조건 '유적 공원·전시관 조성' 3년째 약속 불이행첫 삽도 못 뜬 채 허허벌판…자금난에 연장 신청, 공수표 그치나
이재현

입력 : 2025.05.04 07:01:02
[※ 편집자 주 =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세계 10번째로 강원 춘천에 문을 연 국내 첫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올해로 개장 3년을 맞았습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지만 지역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주변 부지 개발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사업 승인 조건으로 약속한 선사 유적 조성 사업은 아직 첫 삽 조치 뜨지 못해 '미완의 개장'이라는 평가입니다.

연합뉴스는 3년간의 성과와 과제, 진행 중인 논란 등을 기획 기사 3편에 담아 송고합니다.]

"춘천 레고랜드 개발로 한반도 최대 청동기 유적 파괴"
[반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기공식만 3번, 준공 시기도 7차례나 미뤄지는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사업 추진 11년 만인 2022년 5월 문을 연 레고랜드 테마파크는 개장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완이다.

강원도 소유의 하중도 땅 위에 들어선 레고랜드 테마파크는 도시계획 등 여러 실타래가 얽혀 정식 준공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임시 사용 승인 상태로 3년째 운영되고 있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 승인의 전제 조건인 선사 유적 공원과 유적 전시관 건립은 올해 9월 약속 이행 완료를 넉 달 앞둔 현재까지도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테마파크 기반 조성 사업을 추진하다 파산 위기에 놓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이하 중개공)는 선사 유적 조성 사업마저 공수표로 만든 셈이다.

유적 전시관 부지 '허허벌판'
[촬영 이재현]

◇ 화려한 테마파크 옆 선사 유적 전시관 부지는 잡초만 무성…첫 삽조차 못 떴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춘천시 중도동 하중도 관광지 일원.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장 당시 흙먼지만 풀풀 날리던 유적 공원 부지는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잡초만 무성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허허벌판.

다만 무성한 잡초밭 군데군데 어디선가 날아든 씨앗이 손가락 한두 마디 굵기의 아까시나무로 듬성듬성 자라난 모습에서 그 누구 책임지지도 살피지도 않는 유적 공원의 처지와 황량한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브릭(Brick)을 활용한 어린이들의 화려한 놀이동산인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불완전체로 만든 선사 유적 조성 사업은 왜 첫 삽조차 뜨지 못했을까.

2015년 6월 춘천 중도 유적 현장 공개 현장
[촬영 이상학]

상중도와 하중도로 이뤄진 중도는 1960년대 말 의암댐 건설로 북한강 물길이 막히면서 만들어진 호수 한가운데에 생긴 섬이다.

선사시대 유적이 다수 발견된 곳이자 레고랜드 테마파크가 들어선 곳이 바로 하중도다.

신석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초기 철기시대∼삼국시대 사이)를 거쳐 삼국시대에 조성된 집터와 고인돌(支石墓) 등 유구(遺構)·유물이 다량 출토돼 섬 전체가 선사유적지나 다름없다.

2013년 4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지석묘와 환호 등 유구는 3천90여점, 금속과 토기 등 유물은 8천여점이다.

유구와 유적만 총 1만4천여점에 달한다.

◇ 조건부 승인 3년째 불이행…레고 브릭에 밀려 방치된 고인돌 선사 유적 발굴이 한창인 상황에서 강원도는 특수목적법인 엘엘개발(현 중개공) 설립을 통해 멀린그룹과의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유적 보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선사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셌다.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 끝에 2020년 6월 '사업을 추진하되 유적을 이전 보존하라'는 조건부 승인이 났다.

중개공은 테마파크 인근 부지에 지상 1층 규모 유적전시관(1천630㎡)을 비롯해 청동기 6만1천500㎡와 원삼국 3만2천㎡ 등 9만3천500㎡를 유적공원으로 조성하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오는 9월 약속 기한이 도래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검은 가림막에 덮인 청동기 유적 고인돌
[촬영 이재현]

그사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하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 지석묘 등 대형 유물은 레고랜드 건설부지 인근 강변(현재 생태공원)으로 옮겨져 검은 가림막을 뒤집어쓴 채 비닐하우스에서 방치되고 있다.

나머지 소형 유물 수천여점 역시 국립춘천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빛을 보지도 못한 채 타향살이하고 있다.

◇ 자금난에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국가유산청에 '3년 더 연장' 요청 중개공은 최근 국가유산청에 유적 공원 조성 시한을 2028년 9월까지 3년을 더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정난 악화 등으로 유적 보존 조치 이행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유적 전시관(왼쪽)과 유적 공원 조감도
[강원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중개공은 중도 내 15개 부지 41만9천㎡ 규모의 땅을 팔아 선사 유적 공원을 비롯한 컨벤션과 생활형 숙박시설, 상가·판매시설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마련했다.

하중도 땅을 팔아 자금과 부채를 갚겠다는 사업 설계는 초기부터 한계에 봉착했다.

십수 년에 걸친 기반 조성 사업 과정에서 무리한 분양 추진과 불리한 계약, 기반 시설 준공 지연 등으로 수 천억원을 소모했다.

조성한 15개 부지 중 강원도에 컨벤션 부지를, 도 출자·출연기관인 강원개발공사(GD·강개공)에 주차장 부지를 각각 매각했지만 자금난은 숨통이 트이지 않았다.

민간에 매각한 2개 부지마저 계약 해지 소송에 휘말려 손해배상 등 우발 채무까지 발생했다.

자금 부족으로 토지소유권 확보와 지적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선분양한 것이 화근이 됐다.

2022년 말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당시 강원도가 대신 갚아 준 대출금 2천50억원까지 포함하면 15개 부지의 땅을 모두 팔더라도 수입보다 지출 비용이 1천억원 이상 많아 적자를 모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사이 2022년 9월 327억원이던 선사 유적 조성 사업비는 지난해 연말 413억원으로 불어나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까시나무 무성한 유적 공원 예정 부지
[촬영 이재현]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는 적자에 허덕이는 중개공을 강개공에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조건부 사업인 선사 유적 조성은 또다시 뒷전이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오동철 춘천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4일 "선사 유적 위에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 꿰진 사업"이라며 "민선 7, 8기 모두 무리한 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되돌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놓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또 "선사 유적 조성 사업은 의지의 문제지만 민선 8기 김진태 도정은 이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잘 마무리하기보다는 고은리 신청사 사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듯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jle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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