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화투도 칠 수 있죠”...세계와 한국 잇는 ‘통역 대모’의 루틴은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5.16 07:51:46
불어 통역 대모 최정화 씨
韓여성 첫 레지옹 도뇌르 오피셰

프랑스 최고훈장 두번째 수훈
전두환~노무현 역대 정부서
통역 도맡으며 한불관계 증진

곧 칠순 바라보는 통역 산증인
50년 어학공부했어도 쉼 없어
한국이미지상 만들어 韓홍보도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 대사관에서 열린 수훈식에서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받은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7시까지 TV5몽드, BBC 뉴스를 보면서 프랑스어를 익힙니다.”



국내 프랑스 통역의 대모로 불리는 최정화 한국외대 명예교수 겸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에게 프랑스어 학습은 지금도 이렇듯 현재진행형이다.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흘러 나온 샹송을 듣고 프랑스어에 빠지게 됐다는 그에게 언어는 삶의 전부와도 같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반세기 가까이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새로운 표현은 아직도 그의 언어 세포를 깨운다.



최 이사장이 생애 두 번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슈발리에(기사장)를 받은 그는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한국과 프랑스 간 우호 관계를 증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22년 만에 오피셰(장교장)를 수훈했다. 최 이사장은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과 프랑스, 또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자임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그랑크루아(대십자장)와 그랑오피셰(대장군장), 코망되르(사령관장), 오피셰, 슈발리에 등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한국인 가운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고(故) 조중훈·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부자가 그랑오피셰를 받았다. 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박태준 포스코 회장 등이 코망되르에 이름을 올렸다.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오른쪽)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수훈식에서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대사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받은 뒤 박수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최 이사장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78년 한국외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그는 프랑스 파리 제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통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한국 1호 국제회의 통역사로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약 20년 동안 2000회가 넘는 국제회의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다.



최 이사장은 자신을 이끈 성장동력은 호기심이라고 했다. 쉽게 접하지 못한 언어와 그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지적 도전이기도 했지만 미지의 세계를 밝힐 때 전해지는 쾌감이 더 컸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경청과 이해의 미덕을 더 크게 느꼈다”며 “직역만으로는 발언의 취지나 적확한 뉘앙스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 발화자는 물론 듣는 사람과 장소,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에서야 밝힐 수 있는 국제 무대에서의 일화도 소개했다. 1993년 한·프랑스 정상회담 때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아내 다니엘 미테랑의 일정에 동행하며 통역 업무를 맡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때의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돼 최 이사장은 이듬해 프랑스에서 미테랑 대통령과 독대하기도 했다.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 대사관에서 받은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이충우 기자]
최 이사장은 “미테랑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스 브레이킹 소재를 고민하기에 몇 가지를 추천했다”며 “국빈 정상만찬 때 미테랑 대통령이 그중 하나로 말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이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느냐고 묻자, 프랑스어의 관용어구를 인용해 ‘내 새끼손가락이 얘기해줬다’며 배려해줘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외국어에 능통해질 수 있는 왕도(王道)로는 끊임없이 듣고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유학 시절 프랑스인 친구들과 살아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화투를 프랑스어로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도 어학 공부를 하는 젊은 후배들에겐 ‘아침에 프랑스어를 20분 들었으면, 낮에는 채팅을 해서라도 습득한 표현을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2003년에는 CICI를 설립해 민간 영역에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이미지상은 한국 이미지의 정수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을 기리는 상으로, 올해로 시상 20주년을 맞았다.



최 이사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과 2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한국을 알리자는 취지로 CICI를 설립했다”며 “문화·예술,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알린 인물을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가 높아지면서 기여해야 하는 바도 커졌다”며 “이번 레지옹 도뇌릐 수훈을 계기로 성숙한 한국 알리기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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