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세부담, OECD서 가장 빠르게 늘었다”…세제 정상화 vs. 부담 완화 ‘팽팽’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입력 : 2025.05.23 16:16:26
<매경DB>


2000~2024년 조세격차(Tax wedge) 증가폭 OECD 전체 1위
“건보료등 사회보험료 증가·소득세 과표구간 경직성이 원인”
‘직장인 감세’ 논의 본격화에 “이제야 정상화” 경고도


21세기 들어 한국 근로자의 세부담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실질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조세격차(Tax Wedge)’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조세체계의 ‘정상화’라는 평가와 함께, 세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23일 매일경제가 OECD의 조세격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 근로자(1인 독신·평균임금 기준)의 조세격차는 2000년 16.4%에서 지난해 24.7%로 8.3%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증가폭은 멕시코(8.2%p)를 앞질러 OECD 회원국 38개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은 같은 기간 오히려 1.3%포인트 줄었으며, 일본(2.8%p)을 제외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G5 국가들 역시 모두 감소세를 나타냈다.

조세격차란 고용주가 근로자 1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총 비용에서 근로자가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을 뺀 비율로, 실질적인 세부담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다. 조세격차가 클수록 기업의 고용 비용은 증가하고, 근로자의 체감 소득은 줄어든다. 따라서 고용시장 유연성과 소비 여력에 모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의 조세격차 확대 경향은 고·저소득층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평균임금의 167%를 받는 고소득 근로자의 조세격차는 2000년대 이후 21세기 전체 기준으로 OECD 2위 증가폭을 기록했고, 저소득층(평균임금의 67%) 역시 같은 기간 2위였다.

최근 5년만 비교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9년 대비 지난해 한국 근로자의 조세격차는 1.8%포인트 증가해 에스토니아(3.6%p)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고소득층은 2.3%포인트 늘어나 전체 1위, 저소득층도 2%포인트 증가해 3위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소득 구간을 불문하고 한국의 근로자 세부담은 과거보다 빠르고 전방위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OECD 조세격차 증가율 추이(1인 독신 근로자·평균임금 기준) ※자료=OECD 데이터 분석


조세격차 확대의 배경으로는 ▲사회보험료율의 상승 ▲소득세 과표 구간의 경직성 등이 지목된다.

우선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 성격의 준조세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은 2000년 2.8%에서 2024년 7.09%까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는 동일한 소득 수준에서도 고용주와 근로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총액이 가파르게 늘어났다는 뜻으로, 실질적인 조세격차 확대의 직접적 요인이다. 홍우형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소득세 체계 자체는 지난 20여 년간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조세격차 확대는 건강보험료와 같은 준조세 부담 증가의 영향이 컸을 가능성이 크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보험료율 인상이 빠르게 진행된 것도 조세격차 확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21세기 들어 사회보험료 증가폭은 4.9%포인트로, 같은 기간 소득세 증가폭(4.6%포인트)을 웃돌았다.

물가 상승에 비해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이 지지부진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8800만 원 이하 소득구간 과세표준은 2012년 이후 단 한 차례만 개편됐다. 이에 따라 명목임금 상승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근로소득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19.1%를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법인세를 앞질렀다.

이러한 상황은 고용시장과 소비 여력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세격차가 빠르게 확대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에 따른 고용 회피 성향이 강해지고, 근로자는 실수령 소득이 줄어든 체감을 느껴 근로 유인이 약화된다.

이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도 직장인 대상 감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가족 수에 따라 과세표준이 조정되는 프랑스식 ‘가족계수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소득세 과표구간을 물가에 연동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빠르게 늘어나는 세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반대 시각도 뚜렷하다. 작년 기준 한국의 평균 조세격차(24.7%)는 여전히 OECD 평균(34.9%)보다 낮으며, 이스라엘 등 6개국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직장 근로자 가운데 면세자 비중이 전체의 33%에 이르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미국(31.5%), 일본(15.1%) 등과 비교해도 높은 편으로, 실제 세부담이 중고소득층에 편중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한국은 직장인의 실효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정상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오히려 과도하게 많은 면세자를 줄이는 공제·감면 축소 등 근본적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인 독신 근로자가 아닌 2인 자녀를 둔 가구로 따지면 최근 5년간 한국의 세부담은 높은 편이 아니다”며 “1인 근로자는 복지정책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 조세격차가 크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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