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디지털 화폐 대세인데 … 韓 '사행성 딱지' 무차별 퇴출

권오균 기자(592kwon@mk.co.kr)

입력 : 2025.06.09 17:49:57 I 수정 : 2025.06.09 19:13:07
벤처 싹 자르는 가상자산 산업 규제
7년 전 정해진 기준으로
유흥·사행업과 같은 취급
혁신 공들인 블록체인社들
벤처기업 자격 박탈 당해
스테이블코인 '폭풍 성장'
月 거래액 수십조 달하지만
토종 벤처기업들 역차별 속
해외파 크립토 이미 韓침투






이재명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며 가상자산 산업을 키우겠다는 기조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가상자산사업자들은 여전히 7년 전 만들어진 기준 때문에 벤처기업 자격을 상실할 수 있다고 크게 염려하고 있다. 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수탁과 결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가상자산 사업체로 등록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벤처인증 기업 자격을 취소당할 위기에 놓였다.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사업 종류가 다양한데도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따지지 않고 사행성 매매업으로만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블록체인 기술기업 DSRV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벤처기업 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다른 정부 기관인 금융위원회에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DSRV 외 2곳의 업체도 벤처기업 인증 취소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병윤 DSRV 미래금융연구소장은 "일본에서 쇼케이스(시연회)를 열며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고 있는데, 회사 대표로부터 벤처기업 취소 통보문이 왔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했다"며 "해외에서는 우리의 기술력을 보고 손을 내미는데, 정작 정부가 배척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DSRV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해외에서 외화까지 벌어들이는 기술기업이다. 대신증권이 IPO(기업공개) 주관사로 나설 만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상화폐 관련 사업이라는 이유로 벤처기업 자격을 박탈하려고 나섰다. 중기부는 지난 4월 DSRV에 보낸 취소 통보문에 "귀사는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한 기업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인 '가상자산 매매 및 중개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취소 처분 대상에 해당된다"고 안내했다.

DSRV에 앞서 블록체인 기업 인피닛블록이 작년 8월 중기부로부터 벤처기업 인증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인피닛블록 역시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및 전자지갑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다. 중기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가상자산사업자 중 벤처기업 자격을 상실한 사업자는 5곳에 달한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중기부로부터 벤처인증 기업 취소 통보를 받기 불과 3주 전에 벤처기업협회에서 벤처우수 기업으로 뽑혀서 상까지 받았는데 허탈했다"며 "금융위에 가상자산업체로 등록했다는 이유로 벤처기업 인증이 취소되는 것이 이치에 맞느냐"고 말했다.

벤처기업 인증이 취소되면 세제 혜택이 없어질 뿐 아니라 정부 사업 수주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중기부가 벤처 업종에서 제외한 업종은 △일반 유흥 주점업 △무도 유흥 주점업 △기타 주점업 △기타 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 운영업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등 6가지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7년 전인 2018년 10월부터 시행 중이다. 당시 정부는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중개업이 사행성을 조장한다고 보고 벤처기업 확인 대상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가상자산이 제도권 편입을 앞둔 현시점에도 동일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DSRV와 인피닛블록은 가상자산 매매·중개업이 아닌 보관·관리 사업만 하고 있지만, 가상자산거래소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서 소장은 "블록체인 기술기업이 무도장 같은 유흥업종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토로했다. 이미 리닷페이 같은 해외 기업이 발행하는 '크립토 카드'가 한국에 무분별하게 침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우리 기업들만 되레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임원은 "유럽은 미카(MICA) 법안이 있고, 미국의 지니어스 법안이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데, 한국은 규제 공백으로 글로벌 업체들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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