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습 직격탄 맞은 韓기업들, 신용등급 줄강등 LG화학·한화토탈·SK지오… 석유화학 기업 '부정적' 평가 신사업 2차전지 분야도 부진 수익성 발목잡힌 상황으로 자금 조달해도 투자 엄두못내 회사채 83%가 채무상환 용도 생존 위한 사업구조 개편작업 건전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비핵심 자산 잇따라 팔아치워
석유화학·2차전지 업종 대기업들의 신용도가 줄줄이 강등된 것은 경기 불황 장기화에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까지 덮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은 기업 재무 상황에 대한 후행적 지표라는 점에서 이번 조정은 누적된 부담이 최종 수치로 가시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1일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정기평가에서 신용등급 하락 기업이 몰린 업종은 석유화학, 2차전지, 건설 등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합산 영업이익률은 올 1분기 기준 -1.2%로 2023년 4분기 이후 손실 구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업현금창출력이 저조한 상태가 길어지며 산업 전반의 재무 부담도 높아졌다. 1분기 기준 주요 석유화학 기업 합산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9.8배로 2021년 말 이후 지속 상승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유지됐지만 대부분 여전히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다. 이는 현재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향후 수개월 내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더해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상태,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 소용돌이 속에서 석유화학 업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가 석유화학 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석유화학특별법'도 발의된 상황이지만 업황 회복은 요원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LG화학, SKC는 수년 전부터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줄이고 2차전지 등 신사업 육성에 나섰지만 2차전지 업황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 이후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이 본격화하면서 재고 조정 여파가 이어진 탓이다. 한기평에 따르면 지난해 유효 등급이 부여된 2차전지 업체 대부분의 수익성이 전년 대비 악화됐으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를 제외한 모든 기업이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불황과 실적 둔화에 산업 전반의 자금 조달 기조도 바뀌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발행된 일반 회사채 약 34조4000억원 중 83%가 기존 채무 상환에 활용됐다. 지난해 1~5월 이 같은 차환용 회사채 발행 비중은 76%였지만 운영이나 시설투자에 쓰인 자금이 줄고 차환 비중이 늘어났다.
국내 석유화학과 2차전지 업계는 고정비 절감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사업구조 재편에 나서고 있다. 신용등급 하향이 현실화하자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가다듬는 모습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수처리 필터 공장을 포함한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고, LG화학은 자회사 워터솔루션을 1조4000억원에 사모펀드에 매각하며 자산 경량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발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간 구조조정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실제 기업 간 협력이나 통합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지주회사 행위 제한 등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제도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전지와 소재 업계에서도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투자 축소와 사업 정리가 잇따르고 있다. 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연간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전년 대비 30% 이상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측은 "공장 가동률과 기존 인프라 투자 수준을 감안할 때 신규 공장 증설은 계획에 없다"고 밝혔다. SK온은 올해 CAPEX 규모를 작년의 절반 이하인 3조원대로 감축한다. 올해 준공 예정인 SK온 북미 포드 합작법인(JV)과 현대차 JV가 완공되면 향후 CAPEX 또한 지속 감소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