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서울페이로 결제되죠?”…지역화폐, 사교육비 할인 수단으로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입력 : 2025.07.07 06:09:34
서울시 결제 데이터 보니

6년간 1.2조 학원업종 결제
성형외과 치과서도 사용돼
도입취지 훼손 비판 목소리
이번 민생지원금 충전 가능
상당수 사교육비로 쓰일 듯


중소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골목. 2025.7.4 [한주형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40대 주부 박 모씨는 매달 자녀의 수학·영어 학원비 50만원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으로 결제하고 5% 할인을 받는다. 박씨는 “자녀의 영어유치원비를 지역화폐로 내는 학부모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역대 최대 발행을 앞둔 지역화폐가 적어도 서울에서는 학원비와 미용 시술비 할인용으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매출을 올려 지역 경기를 살리겠다는 지역화폐 도입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6일 매일경제가 서울시에서 입수한 ‘2020~2025년 5월 서울시 지역화폐 업종별 사용실적’에 따르면 5년 5개월간 총 사용액 5조3000억원 중 23%인 1조2200억원이 학원에서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자료는 업종별로 구분돼 있다. 입시·교습학원 5700억원, 기술·기능교육 3240억원, 예술교육 1780억원, 외국어 1500억원 등이다. 학원 중에는 일부 영어유치원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한 영어, 수학 입시 학원도 대거 포함됐다.

서울시 지역화폐의 할인율은 통상 5%다. 단순히 계산하면 5년5개월간 학원비 할인에만 600억원 이상 서울시와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는 뜻이다.

중소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골목. 2025.7.4 [한주형 기자]


이번에 정부가 1인당 15만~55만원씩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지역화폐로 지급받아 사용할 수 있다. 동네 마트나 식당, 안경점은 물론 교습소, 학원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상당수 민생지원금이 사교육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 분야 사용액도 2020년부터 올 5월까지 6620억원에 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건 분야엔 약국과 병의원이, 복지 분야엔 동네키움센터와 복지관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지출 규모를 고려할 때 상당수는 동네 병원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서울시 지역화폐 가맹점을 보면 웬만한 약국은 물론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등 비교적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병원들도 상당수 등록돼 있다. 가맹점 기준이 연매출 30억원이기 때문에 동네 약국과 병원에서도 대부분 서울시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하다. 약사와 의사는 대표적인 고소득 자영업자로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정부가 할인율을 올리기로 한 부분을 두고도 부정 유통 확산 우려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할인율이 올라가면 불법 상품권 현금화(깡) 유인이 발생한다.

서울페이 가맹점 [사진 = 연합뉴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할인율이 상향되고 1인당 1회 구매한도가 높아지면 정책 의도와 달리 일부에서 부정 유통 유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자는 건지, 국민에게 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건지 지역화폐 도입 취지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약국, 병원, 학원 등에서 사용하는 건 막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순기 행정안정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지난 5일 2차 추경에 따른 지역화폐 할인율 상향 부작용 우려에 대해 “점검과 단속을 더 강화해서 부정 등록, 부정 유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7.07 12:41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