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막자니 식수원 줄고…세계유산 울산 암각화에 남은 과제

하류 댐 탓에 60년간 침수·노출 반복…수위 낮추려 댐 수문 설치 추진울산 식수원 감소 불가피…인근 대구·경북 식수원과 공유도 '난제'
허광무

입력 : 2025.07.13 07:05:01


선명하게 보이는 반구대 암각화 속 동물들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 중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지난 3일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인류사적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공인받았지만, 수십년간 풀지 못한 숙제들은 여전히 떠안고 있다.

먼저 대곡천변에 자리 잡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아직도 큰비만 오면 '수몰의 고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하천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상류까지 수위가 차오르면서 암각화가 물속에 잠기고 마는 것이다.

다행히 이 기구한 처지에서 벗어나도록 뒤늦게나마 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는 사업이 추진 중인데, 이제는 수위가 낮아지는 만큼 부족해지는 식수원을 인접 도시에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하루빨리 시민이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을 구하는 일.

울산시가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가 됐다는 성취감 못지않게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구대 암각화의 여름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댐 상류에서 발견된 암각화…큰비만 오면 물에 잠겨 훼손 한반도 선사 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반구천의 암각화는 프랑스 파리에서 12일(현지시간) 열린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등 2개 바위그림을 포함하는 유산이다.

이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대곡천(반구천) 절벽에 가로 8m, 세로 4.5m가량(주 암면 기준) 크기로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과 바다·육지 동물 등 300여점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수렵·어로 모습을 표현해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적으로 평가받는 이 문화유산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암각화가 불어난 하천에 잠겼다가 다시 물 밖으로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보존은커녕 훼손이 가속하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암각화를 끼고 흐르는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 영향에서 비롯된다.

암각화는 1971년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보다 6년 앞선 1965년 암각화에서 약 4.5㎞ 하류 지점에 생활용수 공급 목적의 사연댐이 건설된 것이 문화재 관리에 악재가 됐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이어서, 큰비로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댐 만수위 표고가 해발 60m인데, 암각화는 53∼57m에 자리 잡고 있다.

즉 댐 수위가 53m만 돼도 암각화 부분 침수가 시작되고, 57m가 넘으면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만다.

물에 잠긴 국보 '반구대 암각화'
지난 2020년 9월 26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긴 모습.빨간색 사각형 안이 암각화가 있는 지점이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댐 수문 설치해 '수몰 수난' 해방 추진…2030년께 준공 기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이 잦아지자 2014년부터는 지속해서 물을 빼내는 방식으로 수위를 낮게 유지하고 있지만, 집중호우나 태풍 등으로 한 번에 많은 비가 내릴 때는 수몰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사연댐을 운영하는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암각화가 물에 잠긴 날은 연평균 42일이었다.

수위 조절 이전인 2005년부터 2013년까지는 침수 기간이 연평균 151일에 달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는 암각화가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올해 7월 초 현재까지 수몰 피해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암각화 침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2021년 댐 여수로에 수문을 만드는 계획이 수립됐다.

너비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하면 댐 수위를 암각화보다 낮은 52m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계획은 환경부가 추진하는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에 반영, 노후한 취수탑의 내진 보강과 함께 현재 추진되고 있다.

총 655억원가량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내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현재 기본·실시설계가 진행 중이다.

제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면, 2030년께 준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구대 암각화 설명하는 해설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댐 수위만큼 줄어든 식수 확보 관건…운문댐 물 활용 '난망' '사연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 침수를 막는다'는 단순 명료한 방안을 그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울산시민 식수를 담은 '물그릇'을 대책 없이 비워버릴 수 없어서다.

역대 지방정부가 암각화 보존 시급성을 강조하면서도, 언제나 그 대전제로 '대체 식수원 확보'를 앞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문제는 댐 수문 설치가 진행되는 현재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다.

대체 식수원은 인접 지역에서 구해야 하는데, 식수를 주고받는 일은 지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1년 마련한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에 '경북 청도 운문댐 물을 활용해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한 물을 울산에 공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운문댐 물은 울산시가 꾸준히 원했던 대체 수원이기도 해서 큰 환영을 받았지만,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다.

우선 통합물관리방안에는 운문댐 물을 공급한다는 짤막한 대원칙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수량이나 공급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이 없다.

오히려 '착공 전까지 객관적 방법을 통해 주민 동의를 구할 것'이라는 조건을 내걸어, 사실상 가장 큰 관건이 될 지역 간 갈등이나 주민 반발 문제는 여전한 숙제로 남겼다.

2022년 경북 구미 해평취수장을 거친 낙동강 물을 대구에 공급하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활용에 여유가 생긴 운문댐 물이 울산에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시와 구미시가 취수원 이전을 놓고 이견을 보인 끝에 협정은 사실상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

이후 대구시는 안동댐 물을 공급받기로 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해 다시 울산지역의 기대감이 커졌지만, 이 역시 이재명 정부 들어 전면 재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업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울산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대구지역 물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울러 지역 간 식수 공급 합의가 잘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운문댐에서 울산까지 약 44㎞ 구간에 도수관로를 설치하는 수천억원짜리 사업이 현실화하기까지는 또다시 지난한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울산시 관계자는 13일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울산은 이전보다 하루 약 4만9천t의 식수원이 부족해지는데, 미래 수요를 생각할 때 그 이상의 물을 받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안에 대구·경북지역 물 문제가 합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 이후 운문댐 물 확보를 위한 절차를 서둘러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hk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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