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TPG가 국내 화장품 용기 제조기업 삼화에 투자해 1년 반 만에 3배 수익을 올린 데 힘입어 아시아 중견기업(미드캡)을 겨냥한 신규 펀드 조성에 나섰다. 한국을 비롯해 호주,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망 미드캡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될 전망이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TPG는 최근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아시아 미드캡 바이아웃 블라인드 펀드' 조성 작업에 착수했다. 이 펀드는 수천억 원의 기업가치를 지닌 중견 비상장사·상장사를 선별해 집중 투자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서 TPG는 지난해 55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8호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해당 펀드는 투자 기준이 최소 7억달러(약 1조원) 이상인 대형 딜 중심이었던 데 반해 이번에 조성되는 미드캡 펀드는 그보다 규모가 작은 강소기업에 특화된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TPG가 이 같은 전략을 구체화하게 된 배경에는 최근 KKR로 매각이 결정된 삼화 투자의 성공이 있다. 삼화는 국내 대표 화장품 용기 및 펌프(디스펜서) 제조기업으로, TPG는 2023년 말 삼화와 관계사 4곳을 약 3000억원에 인수했다. TPG 인수 당시 삼화는 플라스틱 병 제조를 주력으로 하며 가족경영으로 운영되는 평범한 중소기업이었다.
TPG는 인수 직후 분산된 지배구조를 일원화하는 한편 '기업화' 작업에 돌입했다. 관계사 4곳을 삼화 아래로 통합하고 회계와 재고관리 시스템을 정비했다. 아울러 삼화의 핵심 경쟁력이 디스펜서 기술에 있다고 보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수익 펌프 중심으로 전환했다. 삼화가 생산하는 펌프는 분사량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내용물 누출을 막는 기술 등이 적용돼 글로벌 화장품 제조사들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TPG는 기술 고도화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고객 유치에도 공을 들였다. 윤신원 TPG 부대표는 지난 1년간 세계 주요 화장품 박람회를 10여 차례 넘게 직접 찾아다니며 삼화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중국 1위 화장품 용기 제조사 샤신을 보유한 블랙스톤과 2위 업체 HCP를 인수한 칼라일 등 글로벌 PEF들이 잇따라 삼화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투자자(FI)도 관심을 보였고, 최종적으로 KKR이 약 8000억원을 제시해 삼화를 품에 안았다.
TPG는 배당금 등을 포함해 총 9000억원을 회수하면서 1년 반 만에 원금 대비 수익 배수(MOIC) 3배, 내부수익률(IRR) 75%라는 성과를 거뒀다.
IB 업계에서는 미드캡 밸류업의 정석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한 지분 투자에 그치지 않고, 지배구조 개선과 생산망 통합, 포트폴리오 재편, 전문경영인 도입, 글로벌 고객 확장으로 이어진 종합 밸류업이 실질적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삼화 사례는 국내 PEF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형 딜 중심의 경쟁 과열과 후유증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TPG는 중견기업을 발굴해 '실력'으로 가치를 끌어올리는 정공법 전략을 택했다. 업계에선 이번 성과를 계기로 TPG의 아시아 미드캡 펀드 조성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