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타깃, 美서 韓·日로 이동 경제성장 부진·시장 포화에 행동주의 활동 반경 넓어져 밸류업 정책 확대도 불지펴 자산 많은데 주가 낮은 기업 주주환원 확대 요구 커질 듯 美선 더이상 안통하는 전술 무방비 韓기업 치명타 우려
코로나19 당시 주춤했던 전 세계 행동주의 캠페인이 2023년을 기점으로 다시 활발해졌다. 또 미국 중심이던 행동주의 활동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막대한 현금과 자산을 보유한 상태에서 주가 저평가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공세가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에 정책적으로 힘이 실리는 점도 이 같은 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3일 영국 거버넌스 리서치 업체 딜리전트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행동주의에 노출된 기업 수는 2020년 126곳에서 2024년 202곳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한국은 10곳에서 66곳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본과 미국에서는 각각 2020년 67곳, 482곳에서 2024년 96곳, 592곳으로 늘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행동주의 캠페인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딜리전트 측은 "지난해 초 금융위원회가 상장기업에 기업가치 제고 방안과 세부적인 배당금 지급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에서 주주행동주의가 힘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행동주의펀드는 일정 수준의 지분을 확보해 주요 주주에 오른 뒤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단기간에 차익을 꾀하는 펀드다.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펀드가 회사에 제안하는 내용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주가 흐름이나 주주환원이 장기간 지지부진한 기업이 사정권에 들 공산이 크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5월까지 코스피의 총주주수익률(TSR)은 연평균 6.3%를 기록했다. 미국 S&P500이 13.9%, 일본 닛케이225가 13.3%, S&P 유로350이 7.1%인 것과 비교할 때 주요 증시 대비 한국 대표 지수 성과가 크게 저조한 수준이었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제한적인 경제 성장 전망과 시장 포화 상황에서 인수·합병(M&A) 등 기업 구조 재편으로 주주행동주의 활동이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면서 "기존 성장 방식이 한계에 봉착한 만큼 TSR 증대가 큰 이슈로 부각될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주주우선주의가 지속되거나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한국은 아시아 선진국 가운데 주가가 저렴한 상태에서 행동주의 캠페인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어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개입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같이 성숙한 시장에서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전술에도 한국 기업은 취약할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한국 기업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수익률이 낮은 현금성 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어 개선 레버리지가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주요국별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을 따져봤을 때 한국(52.1%)은 일본(50.7%)과 함께 그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다. 미국(3.2%), 유럽(17.3%)은 물론 중국(15.5%), 대만(15.6%)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수준이다. PBR이 1배 미만일 경우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한국은 순현금 기업이 48.0%로 주요국 증시 가운데 일본(62.1%)과 대만(52.1%) 다음으로 높았다. 유럽(28.8%), 미국(25.2%)과 큰 차이가 났다. 행동주의펀드 입장에서는 보유한 현금을 주주환원 확대에 사용하라고 요구할 기업이 많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 이미 10년 전부터 기업들이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에 대응하며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2014년 무렵 일본 당국이 지배구조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사외이사 도입, 감사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회사법 개정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이뤄진 시기가 이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