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엘리엇, '삼성물산 합병' 국제재판서 적나라한 공방

엘리엇 "합병 반대하면 이완용 취급" vs 정부 "악성 헤지펀드"
조다운

입력 : 2023.06.21 20:56:09


PCA, '엘리엇 사건' 판정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조다운 이도흔 기자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5년간 이어진 우리 정부와 헤지펀드 엘리엇 간의 국제투자분쟁해결절차(ISDS) 심리에서는 적나라한 공방이 오갔다.

엘리엇 측은 삼성그룹 총수 일가와 결탁한 한국 관료들이 외국 투자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했다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는 악명 높은 헤지펀드가 두 회사의 합병을 기회 삼아 피해자 행세를 한다고 맞섰다.

21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공개한 엘리엇 사건 심리 기록에 따르면 양측은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1건의 서면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다.

핵심 쟁점은 합병 전후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매집한 엘리엇이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였다.

엘리엇이 정경유착의 피해자인지, 위험을 감수한 공격적 투자자인지 가를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

◇ 엘리엇 측 "삼성·부패 관료들이 불공정한 결정…민족주의 악용" 엘리엇 측은 당연히 두 회사의 합병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게 뻔한 합병에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은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부패한 영향력 아래 놓인 한국 정부 관료들'이 내린 "지극히 불공정하며 부당하고, 기이한 결정"이라고 공세를 폈다.

이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부당했다는 점은 한국 검찰이 제시한 증거 등을 토대로 한국 법원에서 반복해서 인정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이에 따른 재판을 주장의 근거로 삼은 셈이다.

엘리엇 측은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투자위원들에게 "합병이 무산되면 국민연금은 외국 헤지펀드에 국부를 팔아먹은 이완용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판결문도 인용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정당한 합병 반대 의견조차 민족주의적 편견으로 찍어눌렀다"고도 주장했다.

외국인으로 구성된 중재판정부의 이해를 돕고자 '(이완용은) 일본제국의 한국 식민지화에 일조한, 가롯 유다에 비견되는 역사적인 매국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삼성합병 찬성 압력' 문형표·홍완선 나란히 징역 2년6개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홍완선 전 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2017년 6월 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부 "엘리엇, 합병 알고도 주식 매집…단기 투자수익 노릴 뿐" 우리 정부는 엘리엇이 두 회사의 합병을 미리 알고도 주식을 사들였다고 반론했다.

정부 제출 자료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26일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엘리엇은 이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2일 삼성물산 주식 340만 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정부는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거론되던 시점에 엘리엇의 투자자문사들이 "한국 기관 투자자들은 재벌 경영에 반대한 확고한 기록이 없다", "삼성의 로비 능력을 둘째가라면 서러우며 합병의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고 검토 의견을 낸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해 합병을 인지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은 소수 주주에게 불공정한 합병이 통과되리라고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청구인(엘리엇)의 부정직한 주장과 모순된다"며 엘리엇이 두 회사 합병을 계기로 "기회를 잡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엘리엇이 세계 각지에서 벌인 '악명 높은 투자'를 열거하며 이들의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막대한 이자를 붙여 상환을 요구한 사례를 소개하며 "엘리엇 그룹은 오로지 단기 투자수익 확대를 목표로 하는 투자자"라고 비판했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연합뉴스TV 제공]

◇ 전문가 "엘리엇 산정 근거 없이 배상 요구…판정 불복도 검토해야" 이러한 항변에도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의 일부 패소를 결정하며 엘리엇에 약 690억원(지연이자·법률비용 포함 약 1천3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면서도 약탈적 헤지펀드에 혈세를 내어주는 것에는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초 엘리엇이 요구한 약 1조원조차 객관적인 산정 근거가 없는 금액이었다"며 "인용된 액수가 7% 남짓이라고 수긍해서는 안 된다.

모두 국민 혈세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ISDS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판정 불복 등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allluck@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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