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스타트업엔 뭉칫돈 몰린다는데”…국내기업 30% 투자 제대로 못 받았다

이호준 기자(lee.hojoon@mk.co.kr)

입력 : 2025.07.05 16:30:03 I 수정 : 2025.07.05 17:26:33
전 세계 AI 스타트업 자금조달 총액 155조
글로벌 VC 투자금은 올 1분기에만 43조원

국내 AI 스타트업 투자액 작년 2500억 원
76곳 중 24곳은 5년간 누적투자금 5억 밑
투자유치 못해 빚더미 앉은 기업 절반 육박

“검증된 스타트업에만 투자로 자금 쏠려
고르게 이뤄져야 혁신적 기술 개발 가능해”


수퍼톤 ‘프로젝트 시프트’ 관객 시연 [사진 = 하이브]
# 2020년 3월 설립된 인공지능(AI) 음향 전문기업 수퍼톤은 음성 합성과 생성형 AI 기술을 이용해 텍스트를 다양한 음성으로 변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전설적인 가수의 목소리를 재현해 인기를 끌었고, 창업자는 타임지가 선정한 ‘AI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2023년 1월 하이브에 450억원에 인수됐고, AI 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 반면 수퍼톤과 같은 해 설립된 AI 콘텐츠 스타트업 A사는 지금까지 유치한 총 투자금이 1억원이 채 안 된다. 매출도 지지부진하고, 회사 미래가 불투명하자 직원들도 줄줄이 퇴사하고 있다. A사 대표는 “매출이 제대로 안 나오고 부채만 쌓여 가다보니 진지하게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픽사베이
세계적으로 AI 열풍이 부는 가운데 글로벌 AI 스타트업들의 몸값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 AI 기업들에겐 ‘딴 나라 얘기’다. 엑시트(Exit·창업자나 투자자가 지분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것)에 성공해 거액을 챙긴 기업도 일부 있지만, 불경기로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빚에 허덕이는 곳이 훨씬 많다.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AI 스타트업에는 투자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 정보업체 딜룸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스타트업 자금 조달 총액은 1100억달러(약 155조원)나 됐다. 2023년 680억달러(약 99조원) 대비 무려 62%나 증가했다. 또 글로벌 벤처캐피털(VC) 리서치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글로벌 VC가 AI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올 1분기에만 300억달러(약 43조원)에 달한다.

AI 기업은 팬데믹으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언택트와 AI 솔루션 수요가 급증하면서 많이 설립됐다. 국내에서도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때 AI 기업이 많이 창업됐다.

5일 벤처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대유행이 절정이었던 2020년에만 104곳이 창업했는데 교육, 금융, 바이오, 반려동물, 소개팅, 술, 전기차 충전을 비롯해 AI와 관련된 다양한 업종에 창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내 AI 스타트업은 극심한 투자 위축에 신음하고 있다. 2020년에 설립된 AI 기업 104곳의 경우 투자 유치금액은 지난 2020년 55억원에서 지난해 2487억원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한 기업들도 많았다. 같은 기간 투자 유치금 확인이 가능한 AI 스타트업 76곳 중 24곳이 현재까지 5년간 누적 투자금이 5억원에 못 미쳤고, 1억원 이하인 곳도 8곳이나 됐다.

[사진 = 더브이씨]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설립된 스타트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1분기국내 AI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한 금액은 총 1949억원으로, 전년 동기(3118억원) 대비 37.5%나 감소했다.

투자를 제대로 유치하지 못함에 따라 빚더미에 앉은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2020년 설립된 AI 기업 중 2023년 기준으로 자본과 부채를 확인할 수 있는 기업은 91곳이었는데, 부채가 자본보다 많은 곳은 무려 절반에 가까운 50곳이었다.

반면 거액에 인수된 기업도 속속 나오고 있어 국내 AI 스타트업 간 양극화가 극심한 모양새다. 실제로 2020년 설립된 AI 기업 중 벌써 5곳이나 인수합병됐다. 450억원에 인수된 수퍼톤 이외에도 100억원 넘는 금액에 인수된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내 한 대형 VC의 투자심사역은 “AI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분별한 창업이 이뤄진 게 원인”이라며 “미팅을 해보면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에 AI 기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접목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창업자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예전에는 괜찮은 기술이나 아이템만 있으면 적당한 금액의 투자가 이뤄졌지만, 최근 벤처투자 혹한기를 맞아 자금 흐름이 경색되다보니 검증된 스타트업 몇 곳에만 거액의 투자금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고르게 이뤄져야 한다”며 “스타트업이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건 기본이고, VC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림과 동시에 악성 규제를 과감히 완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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