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SM 인수…방시혁은 왜 ‘이수만 백기사’로 나섰나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psyon@mk.co.kr)

입력 : 2023.02.10 10:30:07
하이브 방시혁 의장, SM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사진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방시혁이 이끄는 하이브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지분을 전격 인수하며 SM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K팝 업계는 방탄소년단, 세븐틴, 엑소, NCT 등을 한지붕 아래 거느린 ‘공룡 기획사’ 탄생으로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하이브는 SM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422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하이브는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SM 지분 공개매수에도 나선다.

방시혁, ‘사면초가’ 이수만의 백기사 되다
하이브는 SM 지분 인수 목적에 대해 “양사의 글로벌 역량을 결집시켜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로 도약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K팝의 또 한 번의 진일보를 위한 대승적 결정이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방시혁 의장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백기사’로 나선 모양새이기도 하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SM 설립자이자 이번 지분 인수 전까지 최대주주였지만 최근 수년간 경영권을 둔 내분에 휘말렸다. 그는 2010년 SM 사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뒤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SM과 프로듀싱 계약을 맺고 매년 수백억 원의 인세를 받아왔는데 SM 지분 1.1%(특수 관계인 포함)를 보유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의 주주행동으로 압박을 받아왔다.

얼라인은 SM과 라이크기획간의 계약이 SM의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주주행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8월엔 SM 측에 라이크기획 문제 개선을 촉구하며 공개 주주 서한을 보냈고 10월에는 SM에 라이크기획과의 거래뿐만 아니라 대주주, 특수관계자들이 지분을 투자한 관계기업과의 거래 관련 자료 등에 대해 이사회 의사록 및 회계장부 열람·등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라이크기획 문제를 두고 얼라인의 압박이 거세지자 SM은 지난해 12월 31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SM간 프로듀싱 계약 종료를 의미하기에 전통의 SM의 상징적 존재와도 같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입지 역시 흔들렸다.

이후 SM 이성수, 탁영준 공동 대표이사는 지난 3일 이수만 독점 프로듀싱 체계에서 벗어나 5개의 제작센터와 내·외부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멀티 프로듀싱’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어 7일에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 카카오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약 1119억원 상당의 신주와 1052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통해 카카오는 123만주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고, 전환사채 인수를 통해 114만주(보통주 전환 기준)를 확보, 총 2171억5200만원을 취득하며 SM 2대 주주(지분율 9.05%)가 됐다.

종전까지 이수만 전 프로듀서의 SM 지분율은 18.46%로 1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카카오 유상증자 이후에는 지분율이 더 떨어져 대주주로서 영향력이 약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법무법인 화우는 “기존 주주가 아닌 제삼자에게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경우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한도에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방법을 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번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결의는 위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위법한 결의”라고 주장하며 “위법한 결의에 찬성한 이사들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 밝혔다.

그러자 얼라인은 SM이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조기 종료 후에도 정산 약정에 따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른바 ‘황제계약’을 폭로하는 공세를 펼쳤다.

얼라인이 공개한 위법행위 유지청구 원문에 따르면 SM은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라이선스 계약을 조기종료했지만 계약 종료 후 정산에 관한 약정에 따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계속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향후 10년간 5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얼라인은 SM 이사회가 사후정산 약정을 이행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지원행위, 업무상 배임의 법령위반 행위 등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의무) 등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SM 현 경영진이 카카오를 2대 주주로 내세우며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조용히 SM과 ‘물밑’ 공감대를 형성해 왔던 하이브는 지분 인수설을 공시한 지 단 하루만에 인수 사실을 공표하며 적극적으로 이수만의 ‘백기사’를 자처했다.



방시혁-이수만 손잡은 배경은…K팝 글로벌 비전 공감대
하이브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방시혁 의장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이번 계약 체결에 앞서 일찌감치 K팝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로 이번 주식양수도계약(SPA) 체결이 이뤄졌다는 게 하이브의 설명이다.

SM과 하이브는 K팝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개척자다. SM은 보아의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시작으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등으로 K팝 산업을 확장시킨 주역이다. 하이브는 세계적인 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을 기폭제로 K팝이 전세계에서 현재와 같은 인기를 누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방시혁 의장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K팝을 하나의 산업으로 일궈낸 것에 대해 존경의 뜻을 전달했으며, 이수만이 그려 온 글로벌 비전을 현실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서울대 선후배 학연에 이어 K팝 세계화에 앞장서온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것.

방 의장은 평소 “하이브는 (이수만) 선배님께서 개척하고 닦아오신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주셔서 꽃길만 걸었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상호 간에 존중과 존경의 관계를 표명해 왔다. 그러던 중, 방시혁 의장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올해 초 선포한 ‘Humanity and Sustainability’ 캠페인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당시 일련의 사태로 칩거하며 고심 중이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지속가능한 K팝의 영향력 활용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방시혁 의장이 음악인으로서 문화의 가치를 알고, K팝이 가야 할 미래 방향에 대한 철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결심을 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방시혁 의장은 “하이브는 이수만 선생님께서 추진해 오신 메타버스 구현, 멀티 레이블 체제 확립, 지구 살리기를 위한 비전 캠페인과 같은 전략적 방향성에 전적으로 공감했다”면서 “하이브의 역량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는 지난 1월 15일 SM이 발표한 ‘글로벌 수준의 지배구조’와 연계해 SM의 운영 구조를 선진화하는 노력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하이브는 SM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의지를 확인했고 이미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해 최고 수준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갖춘 것은 물론, 멀티 레이블 전략 운영과 팬덤 플랫폼의 개발 등 업계 선진화를 주도해 온 만큼 SM의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이미 SM과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 간의 계약 해지라는 대승적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하이브와의 합의 과정에선 라이크기획과 SM간 계약 종료일로부터 3년간 일몰조항에 따라 일부 수수료가 이 전 총괄에게 지급되는 내용을, SM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지급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 개인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SM 관계사들의 지분도 하이브에 양도하여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이에 하이브도 관계사 지분 정리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에 추가 재원을 투입하면서 화답했다.

하이브는 SM 지분 인수와 동시에 소액주주 이익 제고에도 나설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최대주주 보유 지분 인수가와 동일한 가격에 소액주주의 지분 또한 공개매수키로 했다. 공개매수를 위한 자금조달 등의 제반 절차는 이미 완료된 상태다.

주당 12만원에 진행되는 공개매수는 최대주주가 누리게 될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자신이 누리게 될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번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적극 찬성했다.

카카오 2대 주주로 내세운 얼라인, 힘 잃나
지난 9일 하이브의 SM 지분 매수설이 알려진 뒤, SM 경영진은 “모든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진통을 예고했다. 하지만 하이브가 기습적으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인수를 공표하고 SM 최대주주로 등극함에 따라 분위기는 반전되고 있다.

특히 그간 SM 경영구도에서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내오던 얼라인은 힘을 잃게 됐다. 카카오를 2대 주주로 내세우며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의 힘겨루기 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얼라인의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하이브의 지분 인수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전 10시 5분 기준 SM은 전 거래일보다 11.47% 오른 10만9800원에, 하이브는 4.64% 오른 20만7500원에 거래 중이다. 카카오는 4.80% 내린 6만7500원을 기록 중이다.

한편 이번 지분 인수로 하이브는 ‘초대형’ 공룡 엔터기획사로 거듭나게 됐다. 하이브에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세븐틴·투모로우바이투게더·엔하이픈·뉴진스·르세라핌 등 인기 K팝 스타들이 포진해 있다. SM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NCT, 에스파 등 경쟁력 있는 IP(지식재산권)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결합이 K팝 시장에 미칠 영향 역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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