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볼 때마다 한숨 나오는데”…연금으로 부자 만들어주는 ‘이 나라’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입력 : 2025.02.06 21:47:28
호주 퇴직연금 稅혜택, 韓 4배

일괄 세율덕 고소득자에 유리
공제 혜택 GDP 2%수준 달해
추가납입 유도로 덩치 키우고
규모의 경제로 수익률도 제고

韓은 강제납입분만 혜택 쏠림
호주보다 의무 납입률 높은데
적립금 낮아 가입자 부담키워


시드니 시내 직장인들 [사진 = 연합뉴스]


호주 정부가 퇴직연금에 제공하는 세제 혜택은 한국의 각종 연금 세제 혜택의 최소 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에서는 추가 납입을 유도하는 연금 세제로 퇴직연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 수익률을 높여 다시 퇴직연금 덩치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이렇게 수익성을 높인 과실은 연금 가입자 전반에 확산되고 퇴직연금으로 각종 노령층 복지정책을 대체해 재정지출도 경감했다.

한국 역시 연금에 적잖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보편복지 성격이 강해 추가 납입 유인이 부족하다.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호주 재무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퇴직연금에 제공된 세제 혜택은 총 536억5000만호주달러로 해당 연도 국내총생산(GDP)인 2조5675억호주달러의 2.08% 수준이었다.

애덤 호킨스 호주 재무부 차관보는 “연금 적립 규모 확대 등으로 2060년대까지 GDP 대비 연금 세제 혜택 비율은 꾸준히 상승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연금 혜택이 확대되는 만큼 노령연금(선별복지 방식으로 저소득층에 더 많은 액수 지급) 지출을 줄여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재정 부담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23년 공식 집계된 연금 공제액이 5조6556억원이다. 이는 국민연금 등 각종 공적 연금에 납입한 보험료에 적용되는 소득공제 4조1128억원과 사적 퇴직연금 계좌에 추가 납입한 액수에 적용되는 세액공제(입금액 600만원 또는 900만원까지 최대 16.5% 공제) 1조5428억원을 합산한 수치다. 해당 연도 GDP(2401조2000억원) 대비 0.24% 수준이다.

한국에서 각종 연금을 수령할 때 부과되는 연금·퇴직·기타소득세도 일반적인 근로·금융소득세에 비해 낮은 세율이 적용돼 세제 혜택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국세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이들 세목의 실효세율을 비교하면 최대 4조7874억원의 세 부담이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획재정부·국세청에 자문해 각종 연금 적립금의 재원별로 연금·퇴직소득세 대신 근로·이자소득세를 적용해 산출한 수치다.

공식 집계된 연금 공제액과 합산하면 총 10조4430억원 규모다. GDP와 비교하면 0.43%로 이마저도 호주의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호주의 연금 세제 혜택 규모가 확대된 것은 고소득자의 연금 납입액이 늘어날수록 세제 혜택이 커지는 체계(상한 3만호주달러) 덕분이다.

호주의 퇴직연금 납입액은 15% 일괄 세율이 적용돼 높은 소득세율을 부담하는 고소득자일수록 납입 유인이 크다. 실제 호주 정부 조사에서도 2021년 기준 연금 납입액에 대한 세제 혜택 중 90%가 소득 상위 50%에 돌아갔으며 소득 상위 10%의 혜택 점유율도 30%에 육박했다.

호주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운용해 거둔 수익에도 15%의 일괄 세율을 적용하는데 이 역시 연금 추가 납입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 결과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더 많은 적립금이 몰려들고 같은 액수의 적립금당 세제 혜택도 커지는 구조가 갖춰졌다.

한국은 강제 납입분에 제공되는 세제 혜택 비중이 훨씬 커 추가 납입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우선 4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납입액 공제는 적립금 추가 납입에 대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 연금 계좌 세액공제는 최대 한도가 900만원으로 제약이 있다.

결국 연금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 경쟁력을 키울 동력은 제공하지 못하고 미래에 연금 수령 인구가 확대되면 재정 부담만 가중되는 구조다.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납입 한도 격차도 크다. 호주의 납입 한도는 연간 3만호주달러이며 5년간 이연할 수 있다. 한국은 연간 한도가 1800만원에 불과하며 이연도 불가능하다.

이 같은 세금 구조 설계 차이로 양국의 퇴직연금 규모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23년 호주 퇴직연금 적립금은 3조5920억호주달러(약 3260조원)에 달했는데, 한국은 3층 구조(공적·퇴직·개인) 연금을 모두 합산해도 1500조원 수준에 그친다.

양국은 경제 규모가 비슷하고 근로소득에서 연금에 의무 납입해야 하는 비율은 한국이 오히려 높은 것을 감안하면 연금 세제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는 기준소득월액의 9%를 국민연금에 납입하며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을 납입한다. 이 같은 의무 납입액을 합산하면 호주 퇴직연금의 현행 의무 납입 비율(11.5%)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도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개편해 가입자의 추가 납입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절대적인 혜택 규모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맷 린든 호주 퇴직연금가입자협회(SMC) 전략부문 대표는 “퇴직연금 제도가 유지되려면 이용자들이 충분한 매력을 느낄 만큼 공적 영역의 지원(세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드니·캔버라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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