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빼든 금융당국 “은행, 취약층 대출금리 내려라”

한우람 기자(lamus@mk.co.kr),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입력 : 2023.02.14 18:46:23
지난 12월 대출 절반 이자 5%넘는데
현행 은행권 지원책 ‘생색내기’
소비자 도움되는 경쟁촉진책 고민

은행 성과평가 단기지표 벗어나
장기 손실가능성·건전성 고려 필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은행권을 대상으로 ‘시장 경쟁 촉진책’을 내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시장 경쟁 촉진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은행간 경쟁을 통해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산업으로 사실상 ‘과점’ 체제인 데다, 부실 금융사가 될 경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어느 정도의 관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원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해 고금리 상황에서 역대급 실적을 거뒀지만 은행권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실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은행들이 성과급을 뿌리면서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옴에 따라, 금감원도 관련 감독과 검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은행 임직원 성과급이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령에 위배되지는 않는지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복안이다.

14일 이복현 원장은 “고금리와 경기둔화로 국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거액 성과급을 지급하면서도 상생 노력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며 “은행권이 취약 차주들에 대해 보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취약 차주 지원을 위해 손실을 감수해가며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시장 상황에 맞춰 원하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줬을 뿐 ‘이자 장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출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은행에서 연 5% 이상 고금리로 돈을 빌린 사람은 54.1%에 달했다. 연 10% 이상 ‘초고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도 5.4%나 됐다. 작년 1월만 해도 연 5% 이상 대출 비중은 8.2%에 불과했지만 대출 금리가 오르자 작년 9월 37.7%로 뛰었고 11월엔 59.8%로 치솟았다.

작년 하반기 신규 대출자 열 명 중 최소 네 명은 가계대출 평균 금리보다 비싼 이자를 내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리가 갱신된 기존 차주들까지 감안하면 고금리 대출 비중은 더 높다. 이는 은행들이 이자 이익을 불리는데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대출자들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은데 예금 금리만 내리고 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 5대 은행의 이날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35~3.6%로 지난 한달 간 0.8%포인트 가량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하단금리는 각각 0.35%포인트, 0.55%포인트 내리는데 그쳤다. 단순 비교지만 예금금리 하락 폭이 대출금리보다 많게는 두 배 가량 크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들이 금리 인하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를 더 낮추고, 대출 갈아타기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현행 과점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쟁해 ‘효율적인’ 시장 가격으로 금융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은행권이 발표하는 금융지원책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실효성 없는 쭉정이 같은 대책들이 허다하다”며 “은행권이 현행 과점체제를 악용하는지 여부를 유심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은행권이 현금입출금기(ATM), 창구 송금 수수료 면제 등 금융지원책을 내놨지만, 은행권 내부에서도 “비대면 뱅킹 시대에 송금 수수료 면제 혜택 수혜층이 얼마나 되겠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원장은 “은행 성과보수체계가 금융사 지배구조법 취지와 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실시할 것”이라며 “성과평가가 단기 수익지표에만 편중되지 않고 손실가능성, 건전성 등 중장기 지표를 충분히 고려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임직원이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지 아니하도록 보수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사회 내 보수위원회를 설치해 적정성 여부를 자체적으로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또 금감원은 결산검사를 통해 은행 자본적정성을 면밀히 점검해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유도할 예정이다. 4대 은행이 지난해 쌓은 충당금은 작년 2조605억원으로 전년 1조1508억원보다 1.8배 많다. 하지만, 코로나19 피해 우려로 선제적 충당금을 적립했던 2020년 2조11477억원보다는 작은 숫자다. 경기 불확실성과 잠재부실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손실흡수능력을 더 키워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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