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 주요 생산국 브라질의 가뭄, 인도를 강타할 전망인 엘니뇨 등 기후 요인으로 원당 공급 상황이 올해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설탕 가격과 가공식품 가격 상승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정부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원자재 국제 가격 흐름을 추적해온 황유선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24일 국제 원당 가격이 상승하는 배경으로 '가뭄'을 꼽았다. 원당 주요 생산국이 가뭄을 겪으며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올랐다는 것이다.
세계 1위 원당 생산·수출국 브라질은 지난해부터 라니냐에 따른 극심한 가뭄이 발생해 원당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적도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지며 이상기후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난해 남미를 강타했다. 남미 가뭄정보시스템(SISSA)에 따르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부는 '극심한 가뭄'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2위 생산·수출국 인도 역시 지난해 가뭄과 이상고온, 홍수를 줄줄이 겪었다. 이에 따라 원당이 추출되는 사탕수수 작황이 크게 악화했다. 인도제당공장협회(ISMA)는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원당 수출 전망을 지난해 900만t에서 올해 610만t으로 하향 조정했다.
인도 정부의 바이오연료 활성화 정책도 원당 가격이 급등하는 데 일조했다. 사탕수수를 활용한 에탄올은 바이오연료 중 하나다. ISMA는 바이오연료 활성화에 따라 원당 생산량이 450만t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자국 식량안보를 이유로 원당 수출 제한 정책을 시행한 것도 원당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3위 생산국 유럽연합(EU)에서는 지난해 사탕무 재배면적이 줄면서 원당 가격이 올랐다. 사탕무는 사탕수수와 함께 원당을 추출할 수 있는 원료다. EU 농가가 사탕무를 수익성이 더 높은 고부가가치 작물로 대체하면서 지난해 EU의 사탕무 재배면적은 4% 감소했다.
주요 생산국의 원당 공급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할 전망이다. 브라질에서 원당 생산 악화를 유발한 라니냐는 올 상반기 끝나지만 하반기부터는 인도에 엘니뇨가 들이닥친다는 예보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라니냐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오는 3~5월 엘니뇨 발생 확률은 1%에 불과하지만 9~11월에는 무려 62%로 치솟는다.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5~2017년 인도의 원당 수출은 평시보다 168만t 줄었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브라질의 휘발유 연방세 면제 조치가 이달 말 종료된다는 점도 원당 가격을 추가로 올릴 수 있다. 휘발유 연방세 면제 연장이 시행되지 않으면 대체재인 에탄올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일한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원당의 생산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제 원당 가격 상승으로 국내 설탕과 가공식품 가격 상승이 염려되는 가운데 24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돼 있다. <이승환 기자>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에탄올의 주원료는 사탕수수와 옥수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브라질은 전 세계 에탄올의 26.3%를 만들어내는 생산 2위 국가다. 친환경 기조에 따라 바이오연료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된다면 브라질의 에탄올 생산이 느는 동시에 원당 생산은 쪼그라들 확률이 높다. EU와 인도 역시 각각 에탄올 생산 4위와 5위 국가인 만큼 원당 공급 부진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현재로서는 제당업체에 발 빠른 원당 수입을 권고하는 것 외에 달리 실행할 정책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원당으로 만드는 설탕, 설탕으로 만드는 가공식품 가격은 기업이 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아직 원당 가격 상승의 영향권에 들지 않은 국가에서 신속하게 물량을 들여와야 한다고 각 기업에 전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는 제당업체 등 관련 업계에 경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당업체는 (원당 가격 상승의 영향을 덜 받은) 태국과 호주 등에서 물량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원당 수입국을 새롭게 뚫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이나 인도의 원당 가격이 오르면 태국이나 호주에 수요가 몰려 이곳의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과 호주는 이미 국내 제당업체들이 원당을 들여오는 국가에 포함돼 있다.
그는 "호주와 태국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된 수입처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원당 수입량은 2018년 179만t에서 2021년 184만t까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