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리핀 우정, 음악방송으로 더 돈독해져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2.03 17:40:23
웅진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12년차 '최장수 DJ' 제니 김
韓 거주 필리핀인 7만명에게
향수 달래주고 생활정보 전달
주한 필리핀대사도 애청자
이주여성센터선 상담 업무도
FTA에 가사도우미 교류까지
"한·필리핀 잇는 가교 될래요"






웅진재단이 운영하는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실에서 '최장수 DJ'로 활동하는 제니 김씨(왼쪽)와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해 수교 75주년을 맞은 한국과 필리핀은 각별한 관계다. 1949년 아세안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필리핀은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인 7420명을 파병하며 전통의 우방국이 됐다. 양국은 경제, 문화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수출입 교역 규모는 2011년 1000만달러를 넘어 지난해 146억7304만달러를 기록했다. 또 현재 한국에는 필리핀인 약 6만7000명이, 필리핀에는 한국인 약 8만7000명이 살고 있다.

2003년 한국으로 건너온 제니 김씨는 국내 필리핀인 사회에서 '전천후 도우미'로 통한다. 본업인 필리핀이주여성센터에서의 상담 업무 외에도 웅진재단이 운영하는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에서 '최장수 DJ'로 활동하면서 동포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이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2013년 방송을 시작해 12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하면서 목소리가 명함이 됐다"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도왔을 때 느끼는 보람이 동력"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은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한국 생활을 돕기 위해 웅진재단이 2009년 개국했다. IPTV 등 6개 미디어 28개 채널을 통해 8개국 원어민 진행자가 저마다의 언어로 하루 24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 같은 취지의 방송 플랫폼은 현재 민간 영역에서 웅진재단이 유일하게 운영 중이다.

방송은 음악뿐 아니라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에서 보내는 삶의 단면이 녹아 있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생활한국어' 코너와 타지 생활을 편히 보낼 수 있는 각종 생활 정보를 전하는 코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필리핀 정부가 한국 여행에 주의하라고 당부했을 땐 재한 필리핀인은 물론 고국에도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우려를 씻었다.

김씨는 "당시 한국 거주 필리핀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은행이 멈추면 어떻게 하나'였다"며 "다행히 계엄 선포 이튿날 바로 정상화됐고, 주한 필리핀대사와 소통하면서 한국 내 필리핀 커뮤니티에 유용한 정보를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리핀 현지 언론의 연락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정확한 뉴스를 전하는 메신저가 된다는 생각으로 한국의 안전함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방송의 파급력은 필리핀 사람들이 국경일로 여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아시아 유일의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9월부터 성탄을 준비할 정도로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향수병에 빠지기 쉬운 기간이기도 하다. 김씨가 필리핀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청취자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까닭이다.

임금 체불이나 가정폭력 같은 문제를 직접 도운 경험도 있다. 15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지만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3명의 자녀가 혹시라도 피해를 입을까 끝내 신고를 못한 이주여성의 사연을 소개할 때는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씨는 "2021년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 200명의 사연을 듣고 2년간 대사관과 공조해 못 받은 돈을 받아냈다"며 "대부업체는 물론 도움이 필요한 곳은 가리지 않고 항상 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당국도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을 중요한 소통 채널로 여기고 있다. 2011년과 2015년, 2017년에는 필리핀 정부가 자국 출신 해외동포 정착에 기여한 미디어를 기리는 국제미디어상 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 참석한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는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은 현재 필리핀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채널 중 하나"라며 "저도 필리핀이 그리울 때 방송을 찾아 듣는다"고 밝혔다.

방송에 대한 김씨의 목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우선 국내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사연을 심도 있게 전하려고 새 코너를 기획 중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을 떠난 필리핀 사람들이 지금도 방송을 찾아 듣고 있다는 점에 힘을 얻었다. 한국인 유학생과 결혼해, 아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으로 온 자신처럼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전했다.

김씨는 "지난해 첫째 아들이 한국인으로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 중"이라며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계기로 다른 이주여성과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지금 느끼는 행복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가 대사는 "지난달 31일 발효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가 올해 본격화하면서 양국 간 인적 교류도 늘 전망"이라며 "필리핀 국민들의 한국 생활 적응에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이 더 큰 활약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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