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에 걸림돌 되는건 다 없애라”…트럼프 타깃 된 한국 법은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최승진 특파원(sjchoi@mk.co.kr)

입력 : 2025.02.14 20:20:23 I 수정 : 2025.02.15 11:49:16
환율·보조금·불공정 관행 등
각국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美 무역전쟁 전선 대폭 확대
트럼프, 우방국 불만 제기하며
韓 콕 찝어 두 번이나 거론
4월까지 각국 협상 카드 마련 분주
美에너지·반도체 장비 수입 확대
“사과·소고기 내주더라도 FTA 지켜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서명한 ‘상호무역과 관세(Reciprocal Trade and Tariffs)’ 메모랜덤(각서)은 관세전쟁의 전선을 특정 산업과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교역·환율 정책, 규제 등 비관세 장벽으로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수년간 미국은 우방국과 적국 모두의 무역 파트너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왔다”며 “우리 노동자와 산업은 불공정 관행과 해외시장 접근 제한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은 지속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두 차례나 직접 거론했다.

홍지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당초 우려했던 보편관세 시나리오보다는 상황이 조금 완화됐지만 예측이 쉽지 않은 비관세 장벽이 부각되면서 향후 상황을 예단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향후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에 장애가 됐던 각종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다. 이 법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반경쟁행위를 차단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미국상공회의소 등은 이 법이 중국 기업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애플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기업을 규제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관세·통상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정부는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환율정책을 살펴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트럼프 정부 1기 당시인 2019년 8월에도 미국은 중국을 25년 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하며 무역전쟁에 불을 붙였다. 한국은 2023년 관찰대상국 리스트에서 빠졌다가 지난해 11월 다시 지정됐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대미 수출은 타격을 입게 된다. 고율의 관세 부과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가신용등급과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무역당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국의 농축산 시장 추가 개방도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발간하는데, 한국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월령제한 조치와 블루베리, 체리, 사과 등 농산물에 대한 시장진입 제한 조치 등을 문제 삼아왔다.

투자시장 개방에 대한 요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률 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무역장벽보고서에서 미국 무역당국은 외국 로펌의 소유지분을 49% 이하로 제한하고, 업무 범위에 제한을 두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육류도매업과 지상파방송, 전력, 간행물 발간 등과 관련된 투자제한도 문제 삼았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한국과 미국은 FTA 체결국으로 관세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비관세 장벽을 들여다보겠다는 미국의 발표는 우리에게 압박이 크다”며 “4월 1일까지 미국 행정부의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비관세 무역장벽에 대한 정부 차원의 상당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전문가들은 다만 세계 각국이 미국이 원하는 카드를 제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준 것으로 평가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미국 정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압박을 하면서 각국과 개별 양자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긴장 수위를 낮췄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한국이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협상 카드로 꼽힌다. LNG의 경우 계약이 종료됐거나 종료되는 물량을 미국산으로 돌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체결한 LNG 장기계약 중 지난해 종료된 물량은 총 898만t이다. 카타르산 492만t, 오만산 406만t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 올해부터 신규 도입계약을 체결한 물량 358만t을 제외하면 540만t의 수입 여력이 생긴다. 여기에 올해 말 단기 계약이 종료되는 물량 202만t을 더하면 미국산 LNG 수입 여력은 최대 742만t으로 늘어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폿성 단기계약상 현재 미국산 LNG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미국산 LNG를 구입하는 게 무역 적자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부문 외에 반도체 장비 등도 대미 수입액을 늘릴 수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 본격화되면 반도체 업체들의 미국산 장비 구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2021년 68억달러에 달했지만 지난해 기준으로는 45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 같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들을 공격 대상으로 보는데, 그와 맞물려 한미 FTA까지 재협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상기온으로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의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FTA 협상 카드로 농산물 분야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개별 산업과 개별 품목의 이익 균형을 맞춘다는 게 어려울 수 있고, 통상당국이 생각하는 이익 균형만으로는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국가별로 얻어내야 하는 게 있고, 양보해야 할 것이 있는 상황에서 외교, 안보 등과 연계된 범부처 협상 패키지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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