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형사사건 기소 엄격 美 1·2심 무죄땐 상고 차단 기계적상고 책임 안지는 韓 최종심 결과 5~7년 뒤 나와 담당검사 이미 자리 옮긴 후 삼성 9년 사법리스크 '족쇄' 무죄난 인보사 사건도 항소 외국인CEO 감옥갈까 안와
형사사건 무죄 판결이 늘고 있지만 검찰의 기계적 항소·상고 관행은 더 강해지고 있다. 1·2심 전부 무죄임에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는 건수가 한 해 200~300건에 이른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무죄가 나와도 항소·상고를 계속하면 최종 결과는 5~7년 뒤에 나오니까, 담당 검사가 자리를 옮기거나 다른 기관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책임지지 않는 항소·상고인 셈이다.
2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1·2심 전부 무죄가 나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한 건수는 각각 277건, 277건, 218건이었다. 상고율은 13.04%, 10.26%, 5.70%다. 상고율이 낮아진 것은 1·2심 전부 무죄 선고 건수가 2022년 2123건, 2023년 2699건에 이어 지난해 3823건으로 분모가 커진 데 따른 착시 효과다.
검찰 항소·상고로 삼성전자 사법 리스크가 10년 가까이 장기화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검찰의 기계적 항소·상고에 대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무죄가 선고돼도 검사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무리한 기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검사 평가제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묻지마 상고'를 견제하기 위해 2018년 1월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전국 23개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에 교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형사상고심의위원회를 도입하고 상고 전에 의견을 듣도록 했지만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회계부정 의혹 수사를 했던 이복현 당시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현 금융감독원장)가 2020년 9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기소한 건이 대표적이다. 기소 3개월 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이복현 부장검사는 기소를 강행했다. 4년5개월여 후인 지난 3일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났지만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첫 기소 당시 윤석열 중앙지검장은 대통령으로, 한동훈 차장은 여당 대표로, 이복현 부장검사는 금감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2심 무죄가 나온 이후 검찰이 상고한 사건의 최종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통계는 별도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 '끝까지' 상고한 사건의 결과를 정책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데이터도 없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1심에서 회계처리, 자본시장법, 배임 등 7개 혐의 모두 무죄가 나온 코오롱그룹의 인보사 사건도 검찰이 항소하면서 2심이 시작됐다. 업계에서는 2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검찰이 상고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한 한국 검찰의 기소는 해외와 비교해도 유독 강경하다. 미국은 플리바게닝(사전형량조정제도)이 활발해 대부분 사건이 사전 조정을 통해 처리된다. 반면 한국은 대표이사에 대한 직접 기소 이후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까지 가는 '삼세판'이 구조화돼 재판 장기화에 따른 부담이 크다. 기업인에 대한 직접 기소가 잦다는 점은 외국계 기업 경영자들이 한국 부임을 기피하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미국의 경우 이중위험금지(Double Jeopardy·더블 제퍼디) 원칙에 따라 형사사건에서 1심이든 2심이든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항소할 수 없는 점도 한국과 차이가 있다. 영국도 이중위험금지 원칙이 있다.
일본은 '정밀사법'으로 기소 자체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일본 형사재판에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 판결이 쉽지 않고, 기소 후 무죄가 나오면 검찰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검찰은 99% 이상의 유죄율을 유지하기 위해 사건을 신중하게 다룬다.
한국에서 1·2심 전부 무죄를 받더라도 피고인이 겪는 고통을 고려할 때 검찰이 상고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