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못해먹겠다”...선진국 6개월 걸릴때 한국은 2년 걸린다?
고민서 기자(esms46@mk.co.kr),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입력 : 2025.03.16 20:30:28
입력 : 2025.03.16 20:30:28
양질 데이터 갖고 있어도 이용 규제 많아
정부 주도 산업 생태계 조성 美·英과 대조
정부 주도 산업 생태계 조성 美·英과 대조

국내에 A항암제를 출시했던 다국적 제약기업 B사는 최근 각 병원을 통해 이 약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정상 의료기관을 통해 처방되는 약은 반드시 사후 효과 등 안전성 검증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문제는 병원마다 환자 데이터를 확인하고 취합하는 절차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병원을 설득해 겨우 데이터를 구해도 그때부터가 또 난관이다. 병원별로 데이터 양식이 제각각이라 국제 기준에 맞춰 표준화하는 작업을 또 해야 한다.
B사 관계자는 “병원별로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승인을 거쳐 데이터에 접근하고 다시 국제 표준에 맞춰 재가공한 다음 분석 과정을 거치려면 2년의 시간이 들어간다”며 “해외에선 6개월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업계에선 한국이 최고 수준의 의료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바이오데이터는 ‘신기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료데이터 활용에 있어서 한국은 이용 기준이 까다롭고 비효율성이 많다”며 “막상 이를 이용해 신약 개발 등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데이터의 기본 인프라는 매우 우수한 편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잘 갖춰져 있어 5000만명에 달하는 전 국민 의료데이터가 있고, 대형 병원들이 앞장서 디지털화에 나서면서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갖췄다.
하지만 정부 지원 체계가 미비해 의료데이터를 이용해 사업을 하는 데 큰 제약이 따른다. 업계에선 한국 고질병으로 △의료기관 간 데이터 표준화와 통합 작업이 더디다는 점 △관련법 간 이용에 대한 해석이 엇갈려 법적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 △의료데이터 상용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꼽는다. 정부가 이 같은 리스크를 서둘러 해소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선진국에선 글로벌 디지털 헬스데이터 기술 확보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경쟁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해 개인 맞춤형 치료와 AI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ㅇ16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특허청의 ‘첨단 바이오 글로벌 특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헬스데이터 특허 출원은 6932건(2022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허청이 첨단 바이오 분야의 특허 빅데이터 분석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헬스데이터 분야 특허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5.4% 급증해 첨단 바이오 분야에서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은 병원·제약사 등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원격진료, AI 신약 개발 등에 의료데이터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또 정부가 나서 국민 100만명의 바이오데이터를 확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영리 기업에도 데이터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UK 바이오뱅크’ 사업을 통해 50만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는데, 유전체 R&D 분석 분야에서 기업이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전 국민의 10%에 달하는 50만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한 핀란드의 ‘핀젠 프로젝트’도 비슷하다. 다국적 제약사가 참여하는 민관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데이터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올 들어 2032년까지 100만명의 바이오데이터를 확보하는 빅데이터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기업 상용화 등 민간 협력에 대한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미권 빅파마가 아시아 바이오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지금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라며 “기업이 데이터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대대적인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 고민서 기자 / 서울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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