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속내는 약달러 만들기 … 원화값 절상 압박 대비해야"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신유경 기자(softsun@mk.co.kr)

입력 : 2025.04.20 17:39:45 I 수정 : 2025.04.20 19:53:27
최종구 국제금융대사 인터뷰
관세戰 다음은 '마러라고 합의'
과거 교역국 환율 굴복시킨
1985년 플라자합의와 유사
트럼프 압박에 韓 성장 위협
대선용 단기 정책 쏟아지는 韓
장기적인 성장동력 마련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시작했을까.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는 '환율'을 지목했다. 다른 나라 통화가치를 끌어올려 미국 경상수지를 개선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 대사는 "미국은 이미 1971년과 1985년에 관세를 무기로 상대국 환율을 굴복시킨 적이 있다"며 "지금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지하고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그 결정으로 변동환율제가 도입됐으며, 닉슨 대통령은 이후 유럽과 일본 등을 압박해 통화 평가절상 약속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985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이 플라자합의를 맺었다. 이들은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다는 데 합의했다. 두 사례 모두 악화된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회복해 경상수지를 개선하겠다는 배경에서 등장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상황도 흡사하다. 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 말하는 '마러라고 합의'가 결국 플라자합의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겠다는 내용"이라며 "이번 관세전쟁도 결국 환율 조정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사는 다만 "과거에는 교역 상대국이 몇 안 돼 합의가 쉬웠지만, 상대국이 늘어난 지금은 미국에 순응하고 안보 취약성이 높은 한국과 일본부터 각개격파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대사는 "미국에서 원화값 절상 요구를 하게 된다면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대외 균형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로 신중하게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나고, 주식·채권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돼 자연스럽게 원화가 강세를 띠는 건 큰 부작용이 없다"며 "그러지 않고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건 굉장히 병이 많이 든다"고 경고했다.

최 대사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의 환율 조정 요구가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수출길이 막혔을 때 국내 경제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중장기적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그것"이라며 "그 해답은 장기적 성장동력을 확보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설명회(IR)에 나가보면 외국인 투자자는 탄핵 같은 정치 문제보다 상속세, 추가경정예산 가능성, 인구 문제 등 성장을 위한 정책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며 "구조개혁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트럼프 관세 리스크 속에서 2% 성장도 요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최 대사는 "대선주자들이 단기적으로 표를 얻기 좋은 정책만 채택해서는 안 된다"면서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더 푸는 건 단기 처방이고 효과도 길게 가지 않는다. 단기 처방에 의존하는 건 쉬운 길이지만 나중에 큰 고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그런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면서도 자유시장경제를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시장에서 부가 쌓이고, 그 부가 자연스럽게 저소득층 복지로 흘러갈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를 묻자 최 대사는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미국은 1980년대부터 재정지출이 과다하고 가계는 저축이 부족해 경상수지 적자폭이 커졌다"면서 "다른 나라에 환율 압박을 한다고 해도 이 같은 오래된 구조가 깨지지 않는 이상 경상수지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꾀하고 있지만, 고착화된 고임금 구조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사는 "미국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 10%가 안 되는데, 이 비중이 40%대 중반이었던 1970년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다"며 "1970년대부터 급격하게 오른 임금 때문에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할 만한 수준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한 반도체, 자동차 기업들은 공정을 최대한 자동화할 것이므로 고용 효과 역시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대사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듯 "각국 지도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극단적 갈등의 에너지를 쏟아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이어진 국제협력 질서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며 "내수 기반이 취약한 한국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에 대해서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극단적 갈등과 분열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뜻만 따르는 게 과연 우리 경제에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

△1957년 강원 강릉 출생 △고려대 무역학과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한국수출입은행장△금융위원장 △현 국제금융협력대사

[문지웅 기자 / 신유경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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