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시세대 활력 보고서] 격일 경비하며 삶 즐기는 김효엽 씨

대기업 다니다 IMF때 퇴사…이혼하고 손댄 사업들도 중도 포기작은 회사서 무료하게 생활하다 나만을 위한 새로운 도전 결심
김도윤

입력 : 2025.04.27 06:45:01
[※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 서부광장 지하상가 경비 초소에서 만난 김효엽(64)씨.

세월이 묻어나는 여유로운 얼굴에 제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당당하고 멋스럽다.

그는 3년째 이곳 지하상가의 질서 유지와 편의시설 관리, 길 안내 등을 담당하는 경비원이다.

격일로 근무해 쉬는 날이면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오르막 내리막 인생을 닮은 산에 올라 자연을 즐긴다.

격일 경비하며 삶 즐기는 김효엽 씨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김효엽 씨가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 지하상가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2025.4.27

김씨는 대우자동차 영업 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2000년 부도 처리되면서 구조 조정 바람을 피하지 못해 원치 않게 퇴사해야 했다.

이때 나이가 고작 41세였다.

자신만 바라보는 처자식 생각에 실망할 겨를도 없이 구직에 나섰지만 IMF 여파로 채용하는 회사가 없었다.

여러 사업에 도전해 봤지만 경험이 없던 김씨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려운 경제 사정은 아내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결국 이혼 법정에 섰다.

그러다 50이 넘은 나이에 작은 회사에 취직했고 재고 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무료한 일상을 보냈다.

정년이 없었지만 60세가 되자 노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침 회사가 내부 사정으로 한 달간 문을 닫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밖으로 나온 지 1년이 다 될 무렵 우연히 길에서 의정부 일자리종합지원센터가 내 건 '경비 교육 지원' 현수막을 봤고 이거다 싶어 곧바로 신청했다.

위탁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하자 센터가 수강료를 지원하고 관련 취업 정보를 수시로 제공했다.

이 중 의정부역 지하상가 경비원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고 2022년 11월 재취업에 성공했다.

의정부역 지하상가 경비원은 김씨를 포함해 총 6명인데 모두 비슷한 연배다.

격일 경비하며 삶 즐기는 김효엽 씨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 지하상가 경비원 김효엽 씨가 행인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2025.4.27

이들은 격일제로 일하며 4시간 근무하고 2시간 휴식하는 방식으로 지하상가 내 초소 2곳을 교대한다.

김씨는 심야시간대 주취자나 난폭하게 행동하는 행인 등을 맞닥뜨릴 때가 힘들면서도 안쓰럽다고 했다.

특히 노숙자를 밖으로 쫓아낼 때면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과거 자기 모습이 생각나고 혹시 잘못될까 봐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한번은 지갑을 주워 학생증을 보고 해당 대학에 알려줬으나 연락이 없어 포기했는데, 뒤늦게 학생의 부모가 왔다.

"아들이 군 복무 중인데 휴가 나왔다가 잃어버렸고 대신 찾아다니던 중 대학에서 연락받고 왔다"며 고마워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먹으라고 통닭 여러 마리를 두고 간 일화를 얘기하며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 점포에 침입한 절도범을 경찰에 신고해 피해를 막기도 했다.

영업이 끝난 점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뛰어갔는데 망을 보던 일당 1명이 인기척에 도망갔고, 안에서 셔터를 올리지 못한 절도범은 꼼짝없이 갇힌 상태였다.

김씨는 월급과 함께 국민연금을 받는다.

'돌싱'인 데다 딸도 결혼해 출가한 상태라 연금을 포함해 300여만원의 수입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써 부족하지 않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

쉬는 날이면 산에 오르거나 산책하면서 건강을 챙긴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친구들과 만나 청춘을 추억하며 실컷 떠들면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

김씨는 "젊은 시절에는 꺼리던 분야지만 지금은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내 생활도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시니어 일자리 설명하는 김동근 의정부시장
(의정부=연합뉴스) 김동근 경기 의정부시장이 시니어 일자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2025.4.27 [의정부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의정부시는 일자리종합센터를 통해 청년, 중장년, 시니어, 경단녀 등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다중집합 장소를 찾아가 상담해 주고 일자리를 발굴해 구인·구직 만남의 날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취업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과 시니어를 대상으로 1인 1기술 취득 과정과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과정, 경비원과 승강기·기계식 주차관리인 교육 등은 인기다.

40∼59세가 진로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주는 특강도 열고 있다.

의정부시는 센터를 통해 지난해 1천672명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줬으며 올해는 167명(10%) 늘린 1천839명이 목표다.

김동근 시장은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데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정보가 없는 시민들을 만나면 안타깝다"며 "최고의 정책은 일자리라고 생각해 청년뿐만 아니라 중장년과 시니어들이 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활용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를 발굴하고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kyoo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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