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⑶: '아무도 모를 나라'는 없다
이은별 고려대 언론학 박사
우분투추진단
입력 : 2025.05.01 07:00:02
입력 : 2025.05.01 07:00:02

[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세계지도를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한 나라가 완전히 다른 나라 안에 둘러싸인 영토를 세 군데 찾을 수 있다.
바로 이탈리아 내의 산마리노와 바티칸 시국,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중동부 지역의 레소토다.
레소토는 한국의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합친 정도의 면적을 가졌다.
사하라 이남에서 유일한 스키 리조트인 아프리스키(Afriski)가 있는 해발 1천400m 이상의 고산 국가다.
또한, 레치에 3세(Letsie Ⅲ) 국왕을 둔 입헌군주국으로 인구의 99% 이상이 바소토(Basotho)인으로 민족적 동질성이 높다.
레소토는 이처럼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통일된 문화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연일 온 세상을 들썩이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에 직격탄을 맞았다.
미·중 갈등은 차치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의 관세를 적용받은 것이다.
레소토와 함께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회원국인 남아공(30%), 섬유 및 의류 수출 강국인 마다가스카르(47%)와 모리셔스(40%) 역시 고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이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광물 채굴장비, 섬유기계, 중고차 등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남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대한 징벌적 관세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살벌한 세율만큼이나 레소토 사회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섬유와 의류 수출중심의 취약한 경제 구조로 대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레소토 내 리바이스(Levi's), 랭글러(Wrangler) 등 글로벌 데님 브랜드의 현지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 공장 주변의 임대업 및 식료품 소매업 등에서 파생된 경제적 승수 효과가 일순간에 사라질 전망이다.
레소토는 이미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 삭감으로 HIV/AIDS를 포함한 보건 분야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지리적 특성상 국내 정치·경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남아공이나,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협력 관계를 강화한 중국에 손을 내미는 등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의회 연설에서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아프리카 레소토라는 나라의 LGBTQI+ 홍보에 800만달러를 쓴다"며 '끔찍한 낭비'(appalling waste)를 줄이겠다고 레소토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
이에 레소토 외무부 장관은 트럼프의 즉흥적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양국이 상주 공관을 두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16일, CNN은 미 국무부 내부 문건을 인용해 외교공관 폐쇄대상 27개국 중 레소토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효율부(DOGE)를 필두로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따라 공관 통폐합이 현실화하면 양국 관계는 더욱 소원해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지금처럼 아프리카와 경제 관계를 일방적으로 외면해 온 것만은 아니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은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Africa Growth and Opportunity Act)을 제정했다.
정치적 안정성과 민주적 거버넌스, 자유시장 정책, 인권 존중 등 일정 조건을 갖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미국 시장에 대한 무관세 수출 특혜를 보장했다.

도도새는 17세기 멸종되었지만, 현재는 모리셔스의 자연유산을 상징하는 일종의 마스코트다.2024.7.25.[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레소토 역시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와 함께 AGOA를 통해 섬유 및 의류를 미국에 수출해 왔다.
이러한 무관세 혜택은 대미 수출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레소토의 섬유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일례로 수출을 위한 섬유 공장이 가동되면 내수 상품으로 레소토산, 마다가스카르산, 모리셔스산 옷이 현지에서 거래된다.
필자 역시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 여행 중 '메이드 인 마다가스카르'(Made in Madagascar), '메이드 인 모리셔스'(Mauritius) 상표의 티셔츠를 구매한 적이 있다.
바오바브나무 나무 군락지의 관문 도시인 모론다바(Morondava) 해변에서는 공장에서 직접 납품받은 형형색색의 티셔츠를 기념품 가게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Port Louis) 중앙시장에서는 인도인 이주민 4세가 운영하는 상점으로부터 다양한 디자인의 도도새 티셔츠를 골라 살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반추해 보면 트럼프의 고관세가 레소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수출용 의류공장은 저렴한 인건비로 80% 이상의 현지여성 인력을 고용하고, 공정·품질·경영 전반에 대한 기술 이전을 가능케 한다.
이는 자체 의류 생산과 내수 유통 활성화로 이어진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메이드 인 아프리카'라는 특별한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가질 기회를 준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간과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포용적 성장의 한 단면이다.

'모라모라'(mora mora)는 현지어로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다.2024.8.4.[이은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끝으로 레소토(Lesotho) 사람들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레소토안(Lesothoan) 혹은 레소토이안(Lesothoian)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올바른 표현은 모소토(Mosotho, 단수형)나 바소토(Basotho, 복수형)다.
'레소토'라는 국명이 '소토인의 땅'이라는 의미의 토착어에서 유래했기에, 레소토인은 영어의 일반적인 접미사 규칙을 따르지 않고 예외를 적용한다.
네덜란드인을 더치(Dutch)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레소토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언사인 것 같아 어쩐지 마음이 간다.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나라인 레소토.
아프리카, 알고보면 '아무도 모를 나라'는 없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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