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속 안정성 부각 넉달 연속 순매수 행진 이어가 외인 국고채 보유잔액 246조 역대 최대 규모 잇달아 경신 9개월째 주식 순매도와 대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서 9개월 연속 자금을 빼냈지만 채권 시장에서는 상반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채권을 대안적 안전자산으로 여겨 대규모 순매수를 이어갔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들어 4개월 연속 국고채를 순매수했다. 특히 3월과 4월 각각 8조원, 11조원 규모로 국고채를 쓸어담았다.
지난달 말 기준 외국인의 국고채 보유 잔액은 약 245조8600억원으로, 지난해 말(약 226조3200억원) 대비 약 20조원 늘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 잔액이다. 외국인의 국내 보유 채권 잔액은 지방채나 은행채, 회사채 등 크레디트 채권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282조원을 넘어선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팔아 치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국인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9개월 연속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도 행렬을 이어갔다.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약 39조원에 이른다.
최근 한국 채권 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집중되는 배경에는 한국채의 안정성과 높은 신용도가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정책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면서 미국채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3.8%에서 4.6%까지 급등락을 반복했다. 일부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채 대신 한국채 등 신용도가 높고 외환 보유액이 풍부한 국가의 채권으로 분산 투자를 확대했다.
한국 국채는 지난해 10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확정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안정성과 대외 건전성을 인정받은 투자 상품이다. 외국인은 신용도가 높고 유동성이 풍부한 국고채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원화가 저렴한 환경은 한국채의 매력을 더욱 높인 조건 중 하나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외국인의 원화채 현물 보유 잔액이 20조원가량 늘어난 것은 원화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 건전성과 외환 안정성에 주목한 자금 유입"이라며 "2018년 미·중 무역분쟁 당시처럼 중국이 외환 보유액 다변화를 위해 한국 국채 편입을 확대하는 흐름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외국인 매수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은행이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1.75%까지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 환경은 채권 투자에 유리하다.
현재 기준금리가 연 2.75%인데 국고채 3년물 금리가 2.3% 아래로 내려와 고평가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국고채가 약세(금리 상승)로 돌아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도비시(dovish·통화 완화적인)한 금통위 기조와 성장세 둔화에 따라 금리 하락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어 원화채 수요가 강하게 이어질 전망"이라며 "장기 금리 상승 여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